* 주의 * 노약자 및 임산부는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이 앨범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듣다가 혐오감이 드시면 언제든지 끄셔도 좋습니다. 정신 건강에 안 좋을지도 몰라요...
LP 시대든 CD 시대든 디지털 시대이든지 간에 음악을 듣기 전에 먼저 보게 되는 것이 앨범 커버이다. 그렇기에 어떤 뮤지션이든 간에 앨범 커버는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든다. 그런데 이 놈들은 딱 봐도 무언가 위험해보인다. 다른 뮤지션과 무언가가 다르다. 바보가 아니라면 보자마자 눈치를 챌 수 있을 것이다.
실험적인 음악이나 혐오스러운 것을 잘 못 보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음악은 가능한 멀리 하는 것을 추천한다. 호기심으로 듣는 것까지는 말리지는 않겠는데 나중에 이 앨범 듣거나 유튜브에서 뮤직 비디오 혼자서 찾아 듣고 블로그에 와서 댓글로 뭐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충분히 경고 했다. 밤에 잠 잘고 싶다면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마음 약한 사람들이라면 뮤직비디오는 절대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 때 신비주의라는 말이 유행처럼 있었다. 철학이나 신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연예계를 말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대중들로부터 본인들의 모습을 부분적으로만 드러내어 환상을 가지게 한다든지 일종의 신비감을 심는 그런 것 말이다.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모범적인 교과서 듀엣인 다프트 펑크(Daft Punk)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들은 얼굴을 비롯한 자신들의 정체를 숨긴다.......만 이들도 완벽하지는 못해 얼굴과 이름 등이 이미 알려져 있다. 구글에 검색하면 나온다.
하지만 데뷔한 지 43년 동안 정규 앨범만 50장을 냈는데도, 아직도 멤버들의 얼굴은 커녕 이름이 뭔지도 모르는 뮤지션들이 있다면 믿겠는가? 그렇다고해서 오프라인 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월드 투어도 자주 다닌다. 뭣하는 놈들인지 감도 오지 않을 것이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비밀스러운 뮤지션, 더 레지던트(The Residents)이다.
위험한 놈들이 온다
보통 음악을 들으면 여러 가지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가령 이 음악은 즐거운 분위기인지 슬픈 분위기인지라거나 이 가사는 이런 내용이다라든지 이 작곡가는 이런 내용을 의도하고 음악을 만들었다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이 음반은 이런 면에서 상당히 이질적이다. 얼마나 이질적이냐면, 이 정도면 '대중' 음악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말해도 좋을 것만 같다. 아방가르드 음악 쪽 음악이 다 이렇기는 하다만, 아마 내가 이 블로그에서 지금까지 리뷰 했던 / 앞으로 리뷰할 음반이나 뮤지션 중에서는 가장 전위적이지 않을까 싶다.
비슷한 미술 사조로 다다이즘(Dadaism)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1920년경 잠깐 유행했던 미술 사조로 과거의 것들로부터 내려오던 것들을 단절하고 기존의 예술을 모조리 부정하여 '무의미함에 의미'를 두는 그런 사조이다. 이들의 음악은 이 다다이즘과 비슷하다. 1
우선 기존 대중 예술에서 추구하던 가치는 전부 내팽겨쳐버리고 무의미하게 들리는 것들을 가져다놓았다. 물론 무언가 반복되는 것들도 있고 악기 소리도 있기에 음악처럼 들리기는 한다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소음으로 들을지도 모르겠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자동차들의 소리를 녹음해서 음반으로 만들어도 이 음반보다 대중적일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심지어 제대로 된 가사조차 없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인 가사는 이들이 샘플링한 음원의 가사들 뿐이다. 아마도 이들은 음악적으로 완전한 무의미함을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단편적인 소리들을 모아 일종의 청각적 콜라주를 만들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또한 기존의 대중 음악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도 자주 보여준다. 'Meet The Residents'의 제목과 앨범 커버는 대중 음악의 핵심적인 존재인 비틀스(The Beatles)의 미국 데뷔 음반 'Meet The Beatles'의 패러디이다. 제목도 패러디하고 앨범 커버는 아예 난도질을 해놓았다. 첫 곡 [Boots]에서는 낸시 시나트라(Nancy Sinatra)의 히트곡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을 우스꽝스럽게 따라불렀고, 마지막 곡 [N-ER-GEE (Crisis Blues)]에서는 휴먼 바인즈(The Human Beinz)가 커버한 노래 [Nobody But Me]를 샘플링하였다. 2
이렇게 기존의 것들을 부정하고 무의미하게 들리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다이즘과 많이 닮아있다. 제작자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가능하면 가사도 다 찾아보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이 사람들의 음악은 정말 모르겠다. 유튜브 영상의 댓글을 보면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기는 하다.
삶에 지친 당신의 뇌를 위한 마약
믿기 어렵겠지만 (특히 이 음악을 듣고 온 사람들은 더더욱 그러겠지만) 난 이들의 음악을 꽤나 좋아한다. 처음 들을 땐 나도 무슨 장난치는 건 줄 알았다만, 요즘 드는 생각은 상당히 잘 만든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음악은 순진한 어린 아이의 즐거운 장난과 인간의 광기 사이의 어딘가를 달리고 있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아이에게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를 내는 장난감을 선물해주고 녹음을 한 것과 완전히 미쳐버린 사람의 생각을 녹음하는 기계를 발명해서 녹음한 결과물을 5 : 5의 비율로 짬뽕한다면 이런 음악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 마음 속에 내재된 순진한 즐거움과 광기가 이들의 음악에, 믿기 어렵겠지만, 공감하게 만든다. 일종의 정신적인 마약에 빠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에 익숙해지면 처음 들을 때 들리지 않던 것들이 점점 들리기 시작한다. 하나의 거대한 천재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앨범의 Side 1, [Smelly Tongues]와 [Infant Tango]에 등장하는 짧지만 굉장히 마음 속에 꽂히는 멜로디들, 이 앨범에 전혀 안 어울리게 이상하리만큼 얌전한 [Rest Aria] 3, 술에 취한 듯 휘청휘청거리는 리듬들, 각종 악기들의 불협화음들 사이에서 들리는 미묘하고 오묘한 조화로움, 앨범 전체적으로 깔려있는 중독적인 후크(hook)들과 매력적인 보컬 라인('라인'이라 부를만한 부분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 등이 들린다. 4
40여 분의 짧은 시간 동안 이들은 해체적이며 전위적인 광기를 보여준다. 문자 그대로 '광기'이다. 사람의 광기에 소리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리라. 따라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만일 이 음반을 듣게 된다면 다음 몇 가지의 사항들을 준수하고 들어주기를 바란다.
첫째,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하거나 무언가를 바라지 말고 들어줬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바라고 이 앨범을 듣는다면 100퍼센트 실망하게 되어있다.
둘째, 가능하면 '생각'을 하지 않고 들었으면 좋겠다. 이들이 집어넣은 즐거움과 광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생각이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 모든 생각을 벗어버리고 40분간 멍 때리며 들어주기를 바란다.
셋째, 좋든 싫든 세 번은 들어보기를 바란다. 첫 술에 배부른 사람은 없다. 어떤 음악이든 간에 한 번 들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세 번은 듣고 나면 무언가 마음에 꽂힐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지키고 듣는다면 (전부는 아니겠지만) 몇몇 사람들은 나처럼 이 음악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 음악은 마치 술과도 같다. 맛과 향이 강해 바로 입에 넣으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만 막상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나면 목구멍 뒤에서 야릇한 향이 올라와 기분이 좋아진다. 정말 딱 이렇다.
짧은 마무리
이 앨범은 여하튼 참으로 이상한 앨범이다. 이 앨범을 받아들이고 나면 아마 먹어도 될지 잘 모르겠는 이상한 식재료들을 마구잡이로 때려넣고 먹어봤는데 맛있는 음식이 된 기분일 것이다.
참고로 이 앨범은 1974년도 만우절에 출시되었다. 일종의 만우절 장난이었을까, 진심인데 만우절 장난으로 위장한 것 뿐이었을까. 한 번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 여러 의문들이 뒤를 잇는다. 왜 이들은 이런 음악을 하는 것일까, 이들의 정체가 공개되는 날이 오기나 할까, 과연 이 음악으로 돈을 벌기나 했을까. 마지막 질문이 사실 제일 궁금하다.
Coming Up Next...
Once upon a time not so long ago..... Tommy used to work on the do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