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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앨범]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 - 1998




 흔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남들의 입장에 공감도 잘 하고 감정에 잘 휩쓸리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일종의 선입견에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모든 뮤지션들이 감수성이 풍부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뉴트럴 밀크 호텔(Neutral Milk Hotel)의 보컬 제프 맨검(Jeff Mangum)은 그런 것 같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뉴트럴 밀크 호텔 1집을 발표한 직후 제프 맨검이 우연히 [안네의 일기]를 서점에서 구입하게 되었는데, 읽은 후 충격을 받아 며칠 내내 울었다고 한다. 그의 인터뷰에 의하면 매일 자러갈 때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안네 프랑크(Anne Frank)를 구하는 꿈을 꿨었다고 한다. (몇몇 노래 가사를 보면 거의 악몽에 가까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며칠을 운 후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바로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고 하며,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바로 이 2집,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이다. 


 그렇기에 일종의 안네 프랑크 헌정 앨범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필자는 [안네의 일기]를 읽은 적이 없기에 잘 공감은 가지 않는다만,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만약 읽어본 적이 있다면 그것을 상상하며 노래를 들으시면 되시겠다.



안네의 노래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의 음악은 길거리에서 악사가 공연하는 것을 듣는 느낌이다. 통기타 소리가 주가 되는데 여기에 꽤나 감정을 잔뜩 실어 부르는 목소리가 더해져 길거리에서 버스킹하는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특히나 의도적으로 낮은 품질로 녹음을 한 로파이(Lo-Fi) 음악이라 라이브 공연을 녹음한 것 같은 낡고 빛바랜 듯한 분위기가 난다. 곡 중간중간에 "One, Two Three Four"처럼 녹음 전에 들리는 소리들을 섞어서 연출한 것이라든지, 앨범 커버도 의도적으로 오래된 엽서 사진을 잘라 만든 것이라든지, 사운드적인 면 뿐이 아닌 다른 다양한 부분에서 오래되고 거가공되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raw한 를 연출하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이 된다.


 사운드는 기본적으로 통기타와 보컬이 중심이 되는 포크스러운 느낌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 두 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퍼즈톤을 강하게 먹인 베이스나 드럼과 같은 밴드 악기도 나오고, 오르간과 피아노, 각종 브라스들과 같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악기들도 등장하며 라디오 소리와 지지직 거리는 백색 소음에다가 톱 연주[각주:1][각주:2]까지 등장한다. 포크를 기반으로 한 음악이지만 이러한 풍부한 사운드들을 이용해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드림 팝과 같은 사이키델릭하며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보컬과 기타의 오묘한 조합도 눈여겨볼만 하다. 방금 말한 다양한 사운드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앨범의 대부분은 기타와 목소리만 등장한다. 더구나 기타도 무언가 엄청난 기교를 요구로하는 연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코드, 많아봤자 서너 개의 코드 반복이 주된 진행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여기에 제프 맨검의 보컬이 들어가니 분위기가 바뀌게 된다. 목소리에 페이소스(Pathos)를 자아내는 힘이 있다고 할까,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보컬은 마음 속 구석구석을 찌르고 다닌다. 뛰어난 가창력이나 기교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단순하게 멜로디를 따라 가사를 읊는 것인데 기타의 소리와 합쳐져 아련하고 애절한 분위기를 만든다. 비유를 하자면 목소리만으로 우리나라를 울음에 빠트렸던 김광석 씨나 김현식 씨와 같은 느낌의 보컬이다. 어쩌면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제프 맨검이 느꼈을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감정에 충실하며 전달력이 좋은 가수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가사도 꽤나 이러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한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밥 딜런처럼 읊조리며 부르는 보컬에 가깝기에 가사를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안네의 일기]를 읽고 쓴 가사들이라 앨범 전체적으로 [안네의 일기]를 암시하는 가사들이 많다. [Holland, 1945]의 경우 "The only girl I've ever loved / was born with roses in her eyes. / But then they buried her alive / one evening, 1945 / with just her sister at her side."와 같이 1945년도에 사망한 안네를 암시하는 듯한 가사나, 앨범의 제목이기도 한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에 등장하는 "Anna's ghost all around / Hear her voice as it's rolling and ringing through me / Soft and sweet / How the notes all bend and reach above the trees?"처럼 안네 프랑크를 의미하는 Anna나 일기를 뜻하는 the notes 등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And here's where your mother sleeps / and here is the room where your brothers were born"과 같이 직접 안네가 숨어 살던 집으로 가서 그녀에게 말하듯이 노래부르는데, 이는 제프 맨검 본인이 직접 안내자가 되어 안네 프랑크가 겪었던 슬픔과 아픔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네의 일기]가 아니라 '안네의 노래'인 셈이다.



이런저런 단편적인 생각들


 문학과 음악은 예로부터 긴밀한 관계였다. 음악의 초기적인 형태로 음유시인이 존재했다는 것과 2016년 노벨 문학상을 가수 밥 딜런이 수상했다는 사실이라든지 현대에도 꾸준히 시를 노래 가사로 쓰는 음악들이 나온다는 점 등에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둘은 마치 배다른 형제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이미 존재하는 시에다가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만드는 경우도 있고 어떤 가수의 노랫말들을 엮어 책으로 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 앨범을 이런 시선의 연장선상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안네의 일기]라는 훌륭한 문학 작품에 수려한 멜로디를 붙여 하나의 음악 작품을 만든 것이리라. 내가 아직 [안네의 일기]를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읽고 이 앨범을 다시 듣는다면 그 때의 느낌이 지금과 사뭇 다를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다. 



 항상 나는 음악을 들을 때 앨범 째로 들으려고 노력한다. 순서도 바꾸지 않고, 한 번 듣기 시작하면 가능한 끝까지 다 들으려고 한다. 작곡가가 이렇게 앨범을 만든 데에는 그럴만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제작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차원에서이다. (물론 그런 의도가 없는 앨범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앨범의 경우 나의 이런 습관과 잘 어울리는 앨범이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곡이다.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곡이다. 데이비드 보위의 'Ziggy Stardust...' 앨범이나 그린데이의 'American Idiot' 앨범처럼 하나의 작품으로 되어 이야기와 같은 서사적인 구조를 가진다거나, 앨범 전체적으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져 한 권의 소설 책을 읽는 것처럼 완전한 어떠한 구조로 되어있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의 곡'이다. 이 앨범은 각각의 개별적인 11 곡으로 되어있으나 이 곡들은 사실상 하나의 연속된 곡이다.


 비유를 하자면 소설 책이 아니라 역사 책을 읽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소설처럼 필연적이고 복선이 깔린 탄탄한 구조가 아니다. 한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 책처럼 그저 흘러가는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역사에도 개개별 사건들은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필연적인 구조로 기승전결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흘러가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듯, 이 앨범도 그러하다. 각각의 곡들은 연속적이나 필연적이라기보다는 우연적이다. 그리고 우연적이라고는 하지만 굉장히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있다. 역사적 사건들이 우연에 의해 일어나지만 모두가 이어져 있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흐름인 것처럼 말이다. 


 

 글의 거의 초반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곡은 기타와 목소리가 주로 이끌어가는 앨범이다. 하지만 그 기타도 보통은 서너 개의 코드만 퉁기지 그 이상의 기교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앨범이 보여주는 굉장한 흡입력의 주인공은 단연 보컬임을 알 수 있다. 이 보컬은 어마어마한 감성과 멜로디로 청자들을 끌어들인다[각주:3]



 [Oh Comely]라는 곡은 러닝타임이 8분 정도로 이 앨범에서 가장 긴 곡이다. 재밌는 점은 이것이 단 하나의 테이크로 녹음되었다는 점이다. 잘 들어보면 곡의 맨 마지막에서 밴드 멤버 중 하나가 'Holy shit!'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ㅋㅋㅋ 제프 맨검의 인터뷰에 의하면 8분 짜리 곡을 한 번에 녹음해서 밴드 멤버가 존경 반 놀람 반으로 외쳤다고 한다. 우울한 이 앨범의 깨알 웃음 포인트이다.






Coming Up Next....


Boots were made for walkin', that's just what they'll do. One of these days, these boots are gonna walk all over you.....





  1. The Singing Saw라고 한다더라. 톱을 구부린 뒤 활로 긁으며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본문으로]
  2.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와 같은 곡에서 등장한다. 고래의 울음소리 같이 들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본문으로]
  3. 사실 이 문단은 '안네의 노래' 부분에 넣고 싶었지만 어디에 넣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여기다 넣었다. 필자의 못난 글쓰기 실력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