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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앨범] The Beatles (White Album) - 1968





 아직도 난 내 나이조차 이렇게 먹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겠는데, 비틀즈The Beatles의 화이트 앨범the White Album이 벌써 50년이나 되었단다. 40주년이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50주년이라니. 시간이 어쩜 이리도 빠른지.

 

 대중문화의 수명이 50년을 넘기기는 쉽지가 않다. 애초에 대중문화가 빨리 생산되고 빨리 소비되는 성격이 있어서 대부분은 끊임없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반짝했다가 사라진다. 그것들은 DNA만을 후대에 전하고 사라져버리는 우리네 삶과도 같기에, 먼 미래에 미토콘드리아 검사 같은 작업을 통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겨우 그 자취를 확인할 수 있고, 일상생활 속에서는 빛바랜 기억과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50년을 넘긴 문화는 역사나 유물 취급을 받으면서 오래 기억에 남게 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50년은 말하자면 대중문화가 역사의 한 챕터로 남기 위한 분수령이자 1차 관문이겠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라 하면 60년대 후반이니 이제는 60년대의 문화들이 이런 분수령을 넘고 있는 셈이다. 오늘 이야기할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이 대표적인 예이다.

 

 

다양성의 앨범



 60년대는 혼란스럽고 기묘한 시대였다. 합리주의와 물질론,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낙관론을 무참히 꺾어버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상은 충격에 빠졌었다. 이후 대중들은 뒤따라오던 한국전과 베트남전 그리고 쿠바사태에 대항이라도 하듯 반전운동과 혁명의 기운을 뿜어냈다. 미국에서 각종 인권운동자들과 히피들이 활동했던 것이 이즈음이고, 유럽에서 프라하의 봄과 68운동이 일어났던 것도 이때다. 실로, 꿈만 같던 시대였다. 사람은 달 위를 걸었고, 지구에서는 수많은 이상과 허영이 등장했다.

 물론 대중문화 중 그 어떤 것도 역사성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굳이 이 시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반을 하나 꼽아보라고 한다면 필자는 이 앨범을 꼽고 싶다. 시대적인 조류를 타고 등장한 다양성의 음반이자 혁명의 음반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앨범 커버를 슬쩍 본다면 참으로 역설적이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보다 단조로운 앨범이 있을까? 앨범 커버에 아무런 그림도 글씨도 없고, 오직 The BEATLES라는 글자만 엠보싱 처리되어 있다. 사실상 아무런 글자도 프린팅 되지 않은 것이다. 혼란과 다양함보다는 오히려 미니멀리즘이나 다다이즘에 영향을 받아 생긴 이상한 앨범이라고 평하는 게 그럴싸해 보일 텐데 말이다.

 허나 직접 내용물을 살펴보면 시대적 상황을 충실히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은 60년대의 다양성과 혼란을 대표하는 음반으로, 비틀즈의 다른 어떤 앨범보다도, 또 그 어떤 더블 앨범보다도 60년대의 상황을 충실히 반영했다. 화이트 앨범은 가사부터 멜로디, 장르부터 악기까지 하나의 무언가로 표현할 수 없다. 한 평론가는 서양 음악의 역사와 종합[각주:1]이라고 극찬을 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될 것이다.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곡의 가사부터 살펴보자. 비틀즈의 초기 음반들이 얕고 가벼운 노래로만 다분히 채워놨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밴드 활동을 끝내고 스튜디오 앨범 제작기로 들어서면서부터 가사의 깊이는 한층 더 깊어졌다는 것 또한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더구나 화이트 앨범 제작 이전에 이들은 인도 여행을 다녀오며 심적으로 깊은 수련(?)까지 해온 상태로 곡을 완성했다. 그 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가사들의 시적 깊이를 느껴보자.

Dear Prudence, won’t you come out to play? / Dear Prudence, greet the brand new day / The sun is up, the sky is blue / It’s beautiful and so are you / Dear Prudence, won’t you come out and play? 

 Dear Prudence

I look at the world and I notice it’s turning /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 With every mistakes we must surely be learning / Still my guitar gently weeps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Blackbird singing in the dead of night / Take these broken wings and learn to fly / All your life / You were only waiting for this moment to arise

Blackbird 

Images of broken light which dance before me like a million eyes / They call me on and on across the universe / Thoughts meander like a restless wind inside a letter box / They tumble blindly as they make their way across the universe

Across the Universe[각주:2] 

 비틀즈의 초기 음악들과 비교해봤을 때 가사의 깊이와 아름다움, 그리고 다루는 범위도 넓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앞서 이야기한 시대적 상황과 함께 고려해보면 꽤 재미있다. 앞서 인용한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의 가사도 상당히 사회적인 노랫말이라는 걸 알 수 있고, 이외에도 각종 정치 풍자곡(Piggies, Cry Baby Cry), 당시 크게 일어났던 흑인 인권운동에 관한 곡(Blackbird)과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혁명에 대한 곡(Revolution 1, Revolution 9) 등도 수록되어 있다. 사회적 참여를 많이 했던 비틀즈답게 본인들의 이런 의식을 그들만의 은유적이고 시적인 표현으로 아름답게 풀어냈다. 이런 곡들만 있어서는 갑갑하게 느껴질 우려가 있어서 그런지, 앨범 중간중간에 정신줄을 놓은 상태로 만든 것 같은 곡(Wild Honey Pie,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들도 수록했다.

 

 멜로디는 말할 것이 없다. 한때 신해철 씨가 이런 내용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이미 비틀즈가 오선지에서 가능한 모든 멜로디를 다 써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멜로디가 나올 수가 없다.’ 당장 ‘I Will’, ‘Martha My Dear’, ‘Honey Pie’,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같은 곡들을 들어보라. 이런 곡들을 멜로디컬하다고 하지, 무어라고 하겠는가. 이 중독적인 멜로디들을 느껴보라. 특히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풍성한 보컬 스펙트럼과 만나서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각주:3]는 두말할 것도 없다

 

 장르적으로도 폭넓다. ‘Julia’, ‘I Will’ 같은 어쿠스틱 곡부터 ‘Rocky Raccoon’ 같은 컨트리, ‘The Continuing Story Of Bungalow Bill’ 같은 포크, ‘Martha My Dear’, ‘Honey Pie’ 같은 뮤직 홀Music Hall이나 래그타임Ragtime 풍의 곡, ‘Revolution 1’‘Yer Blues’ 같은 블루스 락, ‘Good Night’ 같은 자장가, ‘Glass Onion’, ‘Long, Long, Long’ 같은 사이키델릭 락, ‘Helter Skelter’이나 ‘Everybody’s Got Something To Hide Except For Me And My Monkey’ 같은 하드 락[각주:4], ‘Wild Honey Pie’,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 같이 장난스런 곡, ‘Revolution 9’ 같은 슈톡하우젠의 영향을 받은 실험적인 곡까지... 강력한 중앙집권적 군주는 없으며 오직 춘추전국 시대의 제후들만 있다.

 이에 대한 폴 매카트니의 인터뷰를 들어보자.

There is no central theme to the songs, they aren’t even about a thing in particular. They’re just songs. They’re not even particularly connected.

 앞서 한 평론가가 서양 음악의 역사와 종합이라고 말했다고 했었다는 말을 했었는데, 물론 실제로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렇게만 봐도 제법 많은 장르를 담고 있다. 필자가 한 술 더 떠서 살짝 과장하자면, 누군가가 이 장르는 어떤 음악이야?’라고 물어보면 화이트 앨범을 교과서로서 사용해도 될 듯싶다.

 

 이들의 사운드 또한 풍성하다. 아니, 풍성하다 못해 방대하다. [Rubber Soul], [Revolver]부터 계속된 이들의 실험들은 화이트 앨범에 이르러서 극치를 이룬다. (기회가 되면 이들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루겠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를 가져왔다. 다음은 비틀즈 멤버별로 화이트 앨범 세션 때 사용했던 악기를 정리해놓은 것이다.

 그외에도 다른 세션들을 동원해서 사용한 악기들은 더욱 많다. 바이올린, 트럼본, 트럼펫, 플루겔호른 첼로, 클라리넷, 테너 색소폰, 바리톤 색소폰, 튜바, 스텀프 피들Stumpf Fiddle프렌치 호른, 비올라 등...

 

 여러분에게 9335초 동안 풍성한 사운드를 들려줄만한 확실한 정도의 양이라 생각한다. 괜히 더블 앨범으로 낸 게 아니다. 프로듀서였던 조지 마틴George Martin은 한 장으로 내고 싶어 했지만,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다. 혹자는 그래서 이에 대해 모든 더블 앨범은 세 종류로 나뉜다. 더블이 아닌 한 장으로 냈으면 훨씬 나았을 앨범, 한 장으로 냈어도 지루했었을 앨범, 그리고 화이트 앨범이라고 유머러스하게 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화이트 앨범은 다양한 소리와 가치를 집대성한 앨범이라는 데에 그 첫째 의의가 있다. 발매 당시부터 파격적인 돌풍을 일으킨 앨범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발매 초기에는 비틀즈가 추구했고 이끌어가던 당대 음악계의 흐름에 반하는 앨범이었다는 이유로 몇몇 사람들한테 비판당하기도 했었다. 어떤 의미인지 폴 매카트니의 최근 인터뷰를 들어보자.

You know, it was originally the only reason you got an album was when you had enough successful singles, then they’d bundle it into an album, and that was what albums were for us. But after a while, we started to get intrigued with the whole idea that this is, in those days, it was 40 minutes, 20 minutes each side on the vinyl. So we thought, “Wow. You know, wait a minute. You could do stuff with this.” So we started to get imaginative, you know. So I’m trying to sort of go a bit back to that theory that you might even listen to it the whole way through. Who knows?

 실제로 비틀즈는 [Rubber Soul], [Revolver],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시리즈를 통해서 이러한 아이디어를 굳혀왔다. ‘싱글의 번들로만 듣던 앨범에서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앨범으로 말이다. 세상도 이러한 흐름을 따랐고, 이후로 수많은 콘셉트 앨범들이 등장했으며, 그들의 전작前作 [Sgt. Pepper...] 앨범은 콘셉트 앨범의 효시가 되었다.

 이러던 와중에 등장한 것이 화이트 앨범이었다. 이들이 추구해오던, 그리고 세상이 원하던 컨셉이 잡힌 앨범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린 결과물이니까. 다행스럽게도 이런 일부 사람들의 비판과 우려와는 다르게 화이트 앨범은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세기의 명반으로 남았다.

 

 이런 괴물 음반을 만들어놓고 뻔뻔한 낯으로 앨범 커버를 하얗게 만들었다는 것은, 마치 어린왕자에서 주인공이 어린왕자에게 상자를 그려주며 네가 원하는 양은 그 안에 있어라고 말한 것과도 같다. 비틀즈가 우리에게 빈 캔버스를 주며 네가 원하는 음악은 그 안에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음반은 60년대의 혼란과 다양성을 담아낸 앨범, 바로 화이트 앨범이다.


 

통일성의 앨범

 


 앞서 길게 앨범의 다양성에 대해 논했지만, 다양성을 논하기에 앞서 그 이면에, 이 앨범은 무엇보다도 하나의 작품이다. 처음부터 이 앨범을 천천히 듣는다면, 폴 매카트니가 말했던 싱글의 번들과는 다른 하나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성적인 면에서는 전부 따로 놀고 있는데, 무엇이 이를 하나로 묶어주는가? 바로 안에서부터 새어나오는, 오직 비틀즈만이 낼 수 있는 그 고유한 색깔, 바로 이것이 이 앨범을 하나의 통일된 앨범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해낸다.

 

 이 밴드의 이라는 것은 사실 밴드에게 있어서는 흉터와도 같다. 비틀즈에게 있어서도 깊게 베인 상처의 흔적이다. 밴드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또는 조별과제를 해본 사람이면 잘 알겠지만) 사람 몇이 모여서 일 하나를 할 때 안 싸우기란 정말 힘들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그 갈등이 잘 드러난다. 비틀즈의 경우도 그러했다. 영화와 차이점이 있다면, 퀸Queen은 그 갈등을 잘 이겨내고 아직까지도 밴드가 건재하지만, 비틀즈는 그 갈등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해체[각주:5]했다

 

 사람 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화이트 앨범 세션 당시에도 그랬다. 수년간의 투어 활동으로 지쳐 회의감과 공허감에 빠졌던 존 레논John Lennon은 요코 오노Yoko Ono를 만나 정신적 도피(?)를 시도하고, 폴 매카트니는 분열된 밴드를 하나로 묶어야겠다는 생각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앨범 녹음 직전에 갔던 인도 여행에서 있었던 마하리시Maharishi Mahesh Yogi의 일도 멤버들의 갈등을 키웠고, 이러한 갈등은 개인적인 범위까지 확장되었다. 존 레논은 폴 매카트니의 곡 Ob-La-Di, Ob-La-Da를 보고 ‘Granny music shit’이라 욕하였으며[각주:6], 존 레논이 같이 녹음하자고 했던 곡을 폴 매카트니가 혼자 녹음을 끝내버린 적도 있었고, 심지어 링고 스타Ringo Starr가 세션 중간에 (잠시지만) 밴드를 아예 나가버리기까지 했었다[각주:7]. 이는 밴드 해체의 서막이었다.

 존 레논의 인터뷰를 들어보자.

Paul was always upset about the White Album. He never liked it because, on that one, I did my music, he did his, and George did his. And first, he didn’t like George having so many tracks, and second, he wanted it to be more ‘a group thing’, which really meant more Paul. So, he never liked that album.

 상당히 공격적인 인터뷰이다. 폴 매카트니에 대한 많은 분노가 들어가 있기는 하겠지만, 완전히 거짓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폴은 ‘Get Back’ 같은 곡을 쓰고 앨범 커버도 비틀즈 1[Please Please Me]와 유사하게 찍기도 했으니 말이다.

 또한 이들의 세션 기록을 살펴보면 다 같이 모여 연주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날은 존이 나와서 기타를 녹음하고 돌아가고, 다음 날 오전에는 링고가 나와서 드럼을 쳤다가 오후에 폴이 와서 베이스를 녹음하고 하는 식이었다. 밴드는 이미 베스트팔렌 조약 당시 독일 지도마냥 잘게잘게 찢겨져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앨범에는 자연스레 멤버 각각의 음악색과 성향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세션 직전에 다녀온 인도 여행에서 그들은 수많은 곡을 작곡했고, 이 시기는 비틀즈에게 있어서 다작의 시대였다. 이번 50주년 기념반에는 화이트 앨범 세션 때 녹음된 ‘Esher Demos’‘Sessions’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많은 명곡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일반인들이 흔히 비틀즈 하면 떠올리는 ‘Hey Jude’‘Let It Be’도 이때 작곡되었고, 싱글로 발매된 ‘Revolution’, ‘The Inner Light’, ‘Lady Madonna’와 후일 다른 앨범에 수록될 ‘Mean Mr. Mustard’, ‘Polythene Pam’, ‘Across The Universe’, 멤버들 솔로 활동 때 발매되는 ‘Junk’, ‘Child Of Nature’[각주:8], ‘Circles’, ‘Not Guilty’, 그리고 발표되지 않은 수많은 곡들까지 이 세션과 데모에 담겨있다.

 여기서 가장 괄목할만한 점은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과 링고 스타의 성장이다. 링고 스타는 1962년도부터 썼던 곡인 ‘Don’t Pass Me By’를 드디어 앨범에 수록했고, ‘Good Night’에서 그의 부드럽고 따듯한 목소리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조지 해리슨도 이 앨범에 많은 곡을 실었다. 445초의 대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필두로 ‘Piggies’, ‘Long, Long, Long’, ‘Savoy Truffle’ 같은 주옥 같은 명곡들을 쏟아냈다. 이외에 싱글이나 다른 음반에 내서 화이트 앨범에 수록되지 않거나, 아예 발매되지 않은 곡으로 ‘Sour Milk Sea’, ‘Circles’, ‘Not Guilty’, ‘The Inner Light’ 등을 찾을 수 있다. 존과 폴처럼 조지와 링고도 그들의 음악적 재능을 최대한 활용해낸 시기였다.

 이에 대해서 존 레논은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했다. 한번 자세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George’s songs were getting so much better. He was demanding his rights. The reason why The Beatles made the double White and not Pepper again was because George had so much material, Paul had so much more material, I had so much material and even Ringo had so much material, We made the double White album because it was going to be a double album forever.

 화이트 앨범은 더블 앨범이 될 수밖에 없던 앨범이란다. 이 방대함과 풍부함은 운명적인 것이었다.

 

 그러면 이쯤에서 주어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과연 밴드의 색깔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것은 일종의 정반합과 같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밴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설사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밴드라고 볼 수 없다 생각한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어떤 사회적인 활동을 하던 누군가와 같이 상호작용하기 마련이다. 밴드의 색이란 이런 곳에서 나오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것이 치고받고 싸우든, 조화롭게 잘 해내든,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말이다)

 비틀즈의 경우 이들의 음악적 정반합은, 역설적이지만, 다양성이었다. 존 레논의 음악은 좋게 말하면 센치했고, 나쁘게 말하면 쓸데없이 진지했다. 폴 매카트니의 음악은 좋게 말하면 풍부했지만, 나쁘게 말하면 유치했다. 레논-매카트니라는 역사적인 듀오가 탄생한 것은 존의 쓸데없는 진지함이 폴의 유치함과 만나 적절히 중화되었기 때문이며, 폴의 풍부한 음악의 존의 센치한 가사와 만나 시너지를 냈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지의 감성이 풍부한 음악과 링고의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더해져서 비틀즈라는 밴드가 되었다.

 이런 면으로 볼 때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지던 화이트 앨범 때 다양한 그들 개인만의 색이 나온 것도 당연하지만, 동시에 그 결과물이 무엇보다 좋았으며 무엇보다 비틀즈다운 색이 나온 것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비틀즈의 음악이란 다양성 속의 조화로움, 혼돈 속의 질서와 같은 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앨범은 비틀즈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앨범이며, 그렇기에 이들이 이 앨범의 제목을 [The BEATLES]로 했다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비틀즈이다.

 

 

50주년을 축하하며

 


 좋은 음악을 결정짓는 요소는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 음반을 보고 좋다고 말할까? 앨범을 하나하나 해체해서 끝까지 들여다볼 때 이 앨범은 결코 좋은 음악이 될 수 없다. 개개의 곡들은 서로 독립되어 있어서 모두 개인플레이를 한다. 연주 실력도 썩 좋지만은 않아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대타를 뛰기도 했었다. 보컬 실력은 솔직히 폴 매카트니를 제외하고 멤버 그 누구도 실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

 대개 이런 얘기를 하면 이제 돌아오는 대답은 음악성과 대중성이다. 뛰어난 음악성과 좋은 대중성을 갖추어야 훌륭한 음악이 된다는 소리인데, 대부분의 밴드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음악성과 대중성은 서로 너무나도 다른 두 성질이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전혀 맞지 않아 보이는 두 개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융합될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교과서적인 대답은 바로 비틀즈이다. 또 그들의 정규 앨범 중에 단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화이트 앨범을 대답으로 꼽고 싶다. 이 앨범은 대중성은 어떻게 잡는 것인지, 음악성은 어떻게 추구하는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앨범은 다양성과 통일성을 모두 보여주는 앨범이고, 추가적으로 밴드가 가야하는 길에 대한 좋은 경험도 들려준다. 실력이 굉장히 뛰어날 필요는 없다.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 실력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화이트 앨범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중들에게 소비되는 이유이며 우리에게 비틀즈가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을 정말로 사랑한다. 내게 있어서 음악적 고향 같은 앨범이다. 비틀즈 화이트 앨범의 5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요즘 잘 듣지 않았었는데 오늘 밤에 다시 한 번 들어봐야 겠다. 그럼, Good Night!

 

 

 

P.S.


 이번 50주년 기념 음반은 여러모로 특별했다. 우선 2018 Remix라는 이름으로 자일스 마틴Giles Martin의 새 프로듀싱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음반이 되었다. 각각 음악에 있던 잡음들을 싹 걷어내고 잘 들리지 않던 소리들도 키웠다. (‘Julia’‘Wild Honey Pie’‘Long, Long, Long’2009년 버전과 비교해서 들어보자) 또 에셔 데모와 세션 녹음 본들도 많이 있는데, 비틀즈 덕후들에게는 보물 상자다. 전체 앨범의 어쿠스틱 버전 같기도 하며, 익숙하던 곡들의 새로운 해석을 듣는 느낌이다. 일부 리믹스들은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어제 새로 녹음한 것 같은 느낌이라 하겠다. 기분 좋게 비틀즈의 앨범을 들어보자.

 





  1. 당연하지만 정말 ‘모든’ 음악의 종합까지는 아니다 [본문으로]
  2. 화이트 앨범 수록곡은 아니지만, 화이트 앨범 세션 때 녹음되었고 가사가 유려하기에 넣었다 [본문으로]
  3. 앞서 추천한 네 곡 중 세 곡이 폴 매카트니가 작곡하고 부른 곡이다 [본문으로]
  4. 초기 메탈, 프로토펑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본문으로]
  5. 어쩌면 갈등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못한 것 같다. 그보다는, 비틀즈라는 우리가, 비틀즈라는 이름의 꼬리표가 이 천재들을 가두어놓기엔 심히 좁았던 게 아닌가 싶다. [본문으로]
  6. 폴 매카트니의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이와는 반대로 존 레논이 이 노래를 좋아했다고 밝혔다. 뭐가 진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https://youtu.be/vyh3WLTO82E [본문으로]
  7. 참고로 나중에 [Abbey Road] 세션 때는 조지 해리슨 역시 밴드를 나갔다 들어왔었다 [본문으로]
  8. 후일 Jealous Guy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존 레논의 솔로로 발매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