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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앨범] Doolittle - 1989




 언젠가 아는 분한테 픽시스(Pixies)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 분께서는 잠시 듣더니 '너바나(Nirvana)' 사운드와 유사하게 들린다며, 혹 1990년대 밴드가 아니냐고 물어봤다. 안타깝게도 그 분한테 들려준 음반은 오늘 리뷰할 앨범이기도 한 1989년도 작품 'Doolittle'으로, 심지어 너바나의 1집 'Bleach'가 나오기 한 달 반 전에 먼저 나온 앨범이었다. 그 분은 너바나 이전에도 이런 밴드가 있었냐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 분이 음악을 꽤나 좋아하시던 분이었지만 픽시즈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안타까웠었다. 픽시즈가 90년대 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지만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너바나에 비해 거의 없다시피 한 인지도를 보인다.


 그렇기에 언젠가 리뷰할 'Nevermind'나 'In Utero' 보다도 먼저 이 앨범을 리뷰할 생각이다. 약간 오래 되기는 했어도 좋은 음악은 나이를 안 먹지 않겠는가. 당장 앨범 커버부터 봐라. 귀여운 원숭이도 그려져 있고 숫자들도 써있고 말이다. 좋은 음악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팍팍 샘솟는다.



The Pixies


 픽시스는 굉장히 개성적인 밴드이다. 이들이 주로 활동을 했던 때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의 영향을 받은 각종 그런지 음악들이 많이 나왔음에도, 여전히 그들의 음악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기악 사운드는 그런지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기타 소리는 공간감 있게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이다. 불협화음을 자주 낸다. 베이스는 앨범 전체적으로 앞으로 드러나도록 믹싱이 되어있어 베이스의 퉁 퉁 거리는 그 울림이 잘 전해지고 멜로딕함이 강조되어 있다. 드럼은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며 힘차다. 여러모로 그런지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데, 이런 부분들이 픽시스 음악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성악 파트는 기악 파트에 비해서 유달리 톡톡 튄다. 우선 리드 보컬은 제대로 부르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게 만들게끔 노래를 부른다. 어디서는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질러대기도 하고 어디서는 대본을 읽는 것 같이 부르기도 한다. [Tame] 같은 곡에서는 조용히 부르다가 갑자기 팍 터트려버리며 [I Bleed]에서는 음정을 거의 넣지 않고 대본을 읽는 느낌으로만 노래를 부른다. 음정도 가끔 아슬아슬하게 왔다갔다 거리는데 음이탈을 한 건 아닐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여기에 코러스는 생각 외로 정상적으로 불러 전체적으로 뚜껑이 잘 닫히지 않는 음료수 같은 오묘한 느낌을 준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재미있는 가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사는 보컬 블랙 프랜시스(Black Francis)가 보통 쓰는데, 이름 값을 하는지(?) 대부분의 가사가 어둡고, 초현실적이며, 신비주의나 성경에서 모티프를 따온 내용들이라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표적으로 '눈알을 썰고', '여자들이 아주 끝내주는' 영화인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각주:1]'를 소개하는 내용의 가사인 [Debaser], 인간과 신과 해양 오염 등의 환경 문제와의 관계를 다루는 [Monkey Gone To Heaven][각주:2] 등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가사도 특징적이다. 직접 내용들을 살펴보면 참 난해하게도 써놨는데, 이런 가사들이 적응하기 힘든 보컬 파트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칭찬이다.)


 그리하여, 이런 노이즈가 잔뜩 들어간 날카로운 사운드에 미친듯이 불러대는 보컬, 신비로운 느낌의 난해한 가사가 조화롭게 잘 섞여서 픽시즈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이들의 개성적인 음악은 당대 다른 음악과 비교했을 때 확연한 차별성을 두었었고, 인디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비유를 하자면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보다는 'Velvet Underground And Nico'를 닮은 앨범이랄까. 이들의 음악은 음악적으로 1990년대가 오는데 기폭제가 되어주었다.



Doolittle


 2집 'Doolittle'의 경우 1집 'Surfer Rosa'에 비해서 다분히 멜로딕함이 강조된 모습을 보여준다. [La La Love You]에서는 보컬과 코러스, 휘파람을 적절하게 이용해 멜로디성을 강조했다. 앨범 커버에도 등장한 곡 [Monkey Gone To Heaven]에서는 'This monkey's gone to heaven.'이라는 중독성 강한 후크를 집어넣었다. (필자의 경우 듣고 하루 종일 이 구절만 반복해서 흥얼거리고 다녔다.) 앨범 제목인 'Doolittle'의 모태가 된 곡 [Mr. Grieves]에서는 멜로딕한 기타 소리와 보컬이 등장한다. [Hey]나 [Silver]처럼 곡의 어쿠스틱함을 강조한 곡들도 있고, 여기저기 듣고 흥얼거리며 따라할만한 멜로디를 넉넉하게 넣어두었다. 여러모로 대중과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한 흔적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픽시스는 'Surfer Rosa'에서 보여줬던 자신들만의 색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만의 음악색은 'Surfer Rosa'보다 'Doolitte'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보다 날카롭고 흥얼거리기 좋아진 기타의 소리, 보다 꽉차고 따뜻해진 드럼 소리, 보다 개성있어진 블랙 프란시스의 노래 실력과 노랫말들 등 말이다. 꽤나 짧은 앨범이지만 픽시스의 음악으로 밀도 있게 가득 차있다.



 막상 이 앨범을 직접 듣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른다. '보컬 말고는 그다지 특별해보이는 부분이 없어 보이는데 뭐가 픽시스의 음악색이라는 거지...' 맞는 말이다. 포스트 너바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런 식의 사운드가 익숙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 앨범이 더욱 빛날 수가 있는 것이다. [Debaser]에 등장하는 기악 파트의 사운드는 얼터너티브 락 밴드 팬이라면 굉장한 편안함을 느낄 것이며 [Tame]에서는 'Bleach' 앨범에서 소리 지르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약간 과장을 하자면 이들이 데뷔했던 때에는 이들과 같은 음악을 하는 밴드가 하나도 없었지만, 이들이 해체를 했던 1992년에는 다들 이런 음악을 하는데 바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렇게 써놓으니까 선배한테 인사 똑바로 안 하냐고 화내는 꼰대 같이 들린다. 뭐 그런 의도로 글 쓴 것은 아니고, 그냥 이런 밴드가 있었다 정도만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해서 올린다. 길 가다가 이들의 이름을 보면 한 번 쯤은 고맙다는 인사 정도 해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더구나 음악이 나쁜 것도 아닌데 이런 음악 하나 쯤 더 알아도 손해는 보지 않을테니 말이다. 








Coming Up Next....


Hey, teacher! Leave them kids alone!






  1.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가 각본을 쓴 1929년도 영화로, 영화 도중에 면도칼로 눈알을 써는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끝내주는 여자들이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필자도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온지 90년 된 영화라 애초에 어디서 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본문으로]
  2. 앨범 커버는 이 곡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보면 머리에 링이 있는 원숭이가 있는데 말 그대로 천국에 간 원숭이를 상징하며, 노래 가사에 'If man is 5 then the devil is 6. If the devil is 6, then God is 7.'이라는 가사에서 따와 5, 6, 7이 크게 그려져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