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핸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면 잠금화면에 앨범 커버로 듣고 있는 노래가 크게 나온다. 바야흐로 남들이 보고자하면 내가 무슨 노래를 듣는지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밖에서 듣기엔 앨범 커버가 조금 '부적절한' 것들이 몇 개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서울불바다'이다. 새빨간 앨범 커버에 붙어있는 김정일의 얼굴, 그리고 그 위 대문짝만한 서 울 불 바 다. 남들이 보면 종북 빨갱이들이 들을만한 음악으로 생각하기 딱 좋다. 혼자서 듣는 건 좋지만 새나라의 어린이라면 밖에서는 듣는 것을 자제하거나 앨범 커버를 다른 그림으로 바꿔서 듣도록 하자. 1
불편한 앨범
여러가지 의미로 이 앨범은 편히 들을만한 앨범이 아니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앨범 표지부터 부담이 된다. '서울불바다', 김정일의 얼굴, 붉게 물든 도시의 사진. 표지만 그럴까, 곡들의 제목도 그렇다. [진짜 사나이 붉은 깃발을 들어라], [북괴의 지령], [김정일 만세]... 누가 보면 정말로 간첩인줄 알고 의심 신고해서 내일 경찰서 가기 딱 좋은 곡 제목들이다. 2
또한 밤섬해적단이 추구하는 사상과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이 들어도 굉장히 불편해할만한 내용이 많이 있다. [386 Sucks], [노망난 아버지는 어디가셨니?]와 같이 흔히 '꼰대'로 지칭되는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내용, [전우들과 함께라면 어떤 시발것이든], [신나는 전경 체험기], [이등병의 편지], [행정보급관]처럼 군대라는 제도와 군대 그 자체를 비판하는 내용이나 [성경이 진리이듯이], [폭주족이 더 빨리 달렸으면 좋겠다], [이명박 욕하면 나도 무려 좌파]와 같이 본인들의 다양한 사상을 가감없이 담아내었다. 이런 본인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제목에 적어놓은 것처럼 가사 또한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써놓았다. 가사까지 인용하며 쓰기에는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하지 않기로 하겠다.
장르도 펑크와 메탈의 중간 즈음에 있는 그라인드 코어라 눈 감고 편히 앉아서 감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강하게 디스토션된 베이스 기타와 후려갈기듯 자유롭게 치는 드럼 소리만으로 이루어진 단촐한(?) 사운드라 고전적인 의미의 감상과는 거리가 있는 사운드이다. 노래도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그로울링하며 부르기에 가사를 보며 듣지 않는 이상 가사를 알아듣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어느 정도 이들의 음악을 듣다보면 제목을 듣고 대충 내용이 예상이 가기는 한다. 일종의 반어법 유머를 자주 구사한다.)
마스터링은 또 어떻게 했는지 곡들의 볼륨이 다 제각각이다. 안 그래도 곡의 길이도 4초에서 3분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인데 볼륨 또한 제각각이라니 이토록 불평등한 앨범이 있을까. 본인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와 해명하자면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표현하려는 (청자를 불편케 하는) 음악적인 시도'란다. 굉장히 재밌는 발상과 시도이기는 하다만, 어딘가에서 합주실에서 적당히 믹싱하다가 마음에 드는 소리가 나오면 그대로 저장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판단은 하지 않겠다. ㅎㅎ
이리하여 이 앨범은 불편한 앨범 되시겠다. 사운드부터 내용까지 무엇 하나 불편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직설적이고 자극적이며 단편적이다
이런 불편함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마스터링을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표현하려는 (청자를 불편케 하는) 음악적인 시도'로 불평등하게 한 것 말고, 이들 음악 안에 내포해있는 불편함 그 자체는 어디서 온 것일까라는 말이다.
밤섬해적단의 음악은 직설적이다.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굳이 가리지 않고 다 한다. 제목에서도 직접적으로 그런 말들이 드러나기는 하나 가사를 들어보면 가사들이 더하다.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인용을 못 하겠는데, 찾아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가사도 종종 나온다. 또 대부분의 곡들이 1분도 채 되지 않고 단편적이다. 간단한 베이스 기타 리프 위에 하고 싶은 말 한두 마디 정도만 살포시 얹어놓은 곡들이 대다수이다. 무언가 복잡하고 생각해볼만한 거리를 넣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들의 음악에 담긴 메시지는 그들이 하고싶었던 그 말 뿐으로 가사에 단편적이지만 직설적이고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결국 이들 음악 속에 내포되어있는 불편함은 밤섬해적단 본인들이 느꼈을 불편함이 그대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이 북한에 대해 비웃었다면 그 비웃음이 그대로 가사에 담긴다. 이들이 남한 사회에서 느꼈던 매카시즘도 가감없이 담겨있고, 군대에서 느꼈던 부조리함과 문제의식들이 그대로 담겨있으며, 그들의 시점으로 봤던 기성 세대(통칭 386 세대)에 대한 불만이 담겨있다. 밤섬해적단 본인들이 살아가며 느끼고 생각했던 사회의 문제점들을 그라인드 코어라는 음악을 통해 여과 없이 들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단편적이고 직설적인 이들의 음악은 현대 사회 젊은이들이 만들고 있는 인터넷 문화와 어느 부분 닮아있다. 인터넷을 통해 향유되는 문화는 단편적이고 직설적이며 자극적인 것들이 많다. 인터넷 문화는 익명성에 의해 '바깥 세상'보다 더욱 직설적이 되고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은 것들을 누리고 싶어하기에 단편적이 되며(가령 '세 줄 요약'이나 짧은 대화로 소통하는 트위터처럼 말이다), 넘쳐흐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돋보이기 위해 보다 자극적으로 변한다. 이런 인터넷 문화와 밤섬해적단의 그라인드코어는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60년대의 락이 히피 문화와 만나고 70년대의 락이 펑크 문화와 만났던 것처럼 10년대 대한민국의 락이 인터넷과 만난 셈이라 볼 수 있겠다.
짧은 마무리
밤섬해적단은 밴드 음악의 인지도에 비해서 자주 구설수에 오른다. 대표적인 예시로 앨범 커버를 제작한 박정근 씨가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리트윗해 재판에 불렸던 일도 있고 한 행사에서 특정 계층을 비하하는 표현을 해서 비난을 받은 적도 있었다. 이런 것들은 이들이 본인들의 문제의식을 직설적이고 자극적이며 단편적으로 표현해서 그렇다. (특히나 이들이 반어법과 제목을 통한 '충격 요법'을 좋아하는 터라 더욱더 그렇다.) 그러므로 이들의 표현에 대해 상처 받은 사람이 있거나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마땅히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된 것은, 젊은이들이 이렇게까지 내지르는 본인들의 '불편함'은 어디까지나 사회에서 기인한 것을 한 번 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아, 참고로 본 앨범은 밤섬해적단의 드러머 권용만 씨의 블로그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자기들 앨범이 2년이 지나고도 팔리면 자기들이 U2지 밤섬해적단이겠냐면서 쿨하게 앨범을 무료로 풀었다. 참 그들답다. 링크는 밑에 달아둔다.
http://weareinternetfriends.blogspot.kr/2012/05/bamseom-pirates-seoul-inferno-20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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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 h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