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써두었던 글들을 다 쓰게되어 오늘부터는 매일매일 글을 새로 쓰게 되었다.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수록곡 하나하나 리뷰하는 것이 가독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들어와서 곡 하나하나 리뷰는 앞으로 지양할 생각이다.
Walking in the Spring Wonderland
어느덧 크리스마스 캐럴이 길거리에 다시 울려퍼지는 계절이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이틀 남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크리스마스 캐럴 중에 [Winter Wonderland]라는 곡이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기분을 'Winter Wonderland'를 걸어다니는 것에 비유한 노래이다. 상당히 적절한 비유인데, 조금 비틀어서 똑같이 써먹어볼 수 있겠다. 'Life in Cartoon Motion'은 'Spring Wonderland'를 걸어다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나게 만들어주는 앨범이다.
Wonderland가 있다면, 그리고 그곳에도 만물이 태동하는 봄이라는 계절이 있다면, 이 앨범이 24시간 BGM으로 나올 것만 같다. 앨범 커버부터 곡 하나하나까지 모든 부분에 미카 음악 특유의 발랄함, 생동감을 느낄 수가 있다. 사실 미카의 노래가 전반적으로 이런 밝은 분위기인데 1집인 이 앨범이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인다. [Grace Kelly]부터 [Happy Ending]까지 미카의 비트가 거세게 요동치고 있다.
이런 느낌을 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축복받은 성대 덕분이다. 그의 노래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진성과 가성을 넘나들며 넓은 음역대를 커버하여 노래부른다는 것이다. 미카가 데뷔했을 당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와 종종 비교되곤 했었는데, 왜 그랬는지 알 법도 하다. 나도 처음 들었을 때 자연스레 프레디 머큐리가 생각이 났었으니. 덕분에 미카의 노래는 노래방에서 절대로 못 부른다. 감상하기 좋은 노래와 따라부르기 좋은 노래가 따로 있다면, 미카의 노래는 일반인이 따라부르기 힘들 정도이다.
이런 축복 받은 성대기에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참으로 넓다. 우선 메인 멜로디가 지나가는 음정이 넓고,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어서 코러스나 간간히 나오는 효과음에 다양한 소리들을 넣을 수가 있다. [Love Today] 도입부나 [Lollipop] 도입부 같은 코러스가 그런 예시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팔레트에 물감이 많으니 더욱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여기에 각종 관현악이나 전자음들이 추가되니, 덕분에 아주 풍성한 사운드의 노래들을 들을 수가 있다. 노래가 나오는 50분 동안 양쪽 귀가 지루할 틈이 없다. 귀로 3D 영화를 감상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
그러나 이런 Wonderland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존재이다. 미카는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것인지, 곡의 분위기는 (문자 그대로) 환상적이지만 가사는 암담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와 다른 경우가 많다.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정도로 많다. 비단 이 앨범 수록곡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러하다.
현실은 현실이고 꿈과 희망의 나라는 꿈과 희망의 나라니까 모든 노래가 희망찬 가사만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동화 세상을 걸어다니는 듯한 음악을 만들어놓고 이런 내용의 가사를 붙이는 미카의 행동에 대해 모종의 배신감을 느낀달까.
가령 [Lollipop]은 미카의 사촌 여동생의 목소리를 넣어 동화스러운 분위기를 살린 곡이지만, 가사는 성적인 은유가 가득 담겨있다. [Love Today]는 모두가 오늘을 사랑할 것이라고 노래하며 미카 특유의 발랄함이 잘 살아나는 곡이지만, 정작 가사는 성매매를 다루고 있다. 이외에도 [Billy Brown]이라든지, (이 앨범 수록곡은 아니지만) [Boum Boum Boum]이라든지... 덕분에 남들에게 노래를 추천해줄 때 남들이 가사가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회피하곤 한다. 차라리 [My Interpretation]이나 [Happy Ending]처럼 차분한 분위기에 우울한 가사를 쓴다면 모를까. 앨범을 한 번 듣고 와서 가사를 찾아본다면 내가 말한 배신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런 가사를 붙였나 나름 생각해봤다. [Grace Kelly]의 경우 남들이 원하는 음악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Say what you want to satisfy yourself / But you only want what everybody else says you should want.' 정확히 말하자면 미카한테 퇴짜를 놓은 음반사들한테 하는 소리이다. 앞서 성적인 은유가 들어있다고 했던 [Lollipop]의 경우 어린 사촌 여동생한테 일종의 경고를 하고 싶어서 만든 노래라고 하였다. [Billy Brown]의 경우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가사로 되어있어 미카 본인의 동성애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미카의 마음이 담겨있는 앨범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밝고 즐거운 분위기와 그에 맞는 가벼운 가사가 아니라, 때로는 무거운 내용도 담아내어, 세상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는 듯한 일종의 자기소개형, 자아성찰형 앨범이라 생각한다.
그럼 밝은 노래에 우울한 가사를 붙일 필요가 있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충분히 타당한 반박이다. 하지만 반전되는 무언가가 있을 때 더욱 그것이 강조가 되는 법이다. 색채 대비는 왜 시킬까. 일부러 밝은 노래에 그런 가사를 붙인다면 사람들이 더욱 거기에 집중하지는 않을까.
결론적으로 이 앨범을 통해 하고 싶은 말들을 다 전하고 싶어서 선택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즐겁다
때문에 나는 미카를 끊지 못하겠다. 곡의 분위기는 환상의 세상을 걷는 느낌인지라 우울할 때 즉효약이고 기분 좋을 때 들으면 두 배로 기분이 좋아진다. 가사도 약간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거진 은유적인 표현들이거나 은어를 사해서 왜 이런 식으로 썼나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재미가 있기도 하다. 발음도 쫀득쫀득해서 들으며 따라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나는 미카를 도저히 끊지 못하겠다. 신보 나올 때마다 꾸준히 챙겨 듣는 이유이다.
Coming Up Next....
우린 너무 숨차게 살아왔어. 친구, 다시 꿈을 꿔야할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