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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앨범] 산울림 제3집 - 1978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산울림이 데뷔를 하고 1, 2, 3집을 1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발표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데뷔 이전에 이미 수많은 곡들을 써놓아놨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산울림의 음악사를 이야기할 때 보통 123집을 통틀어 산울림의 초기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들 중 마지막 앨범인 3집이 초기 3부작 중 가장 실험적인 앨범이다. 


 바로 저번에 리뷰를 한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앨범처럼 수록곡은 겨우 5개인데 앨범의 길이는 40분이나 된다. 다행(?)인 것은 저번 앨범처럼 모든 곡이 골고루 긴 것이 아니라 한두 곡이 길다. 사실 하나가 '압도적으로' 길다. 마지막 곡인 [그대는 이미 나]의 경우 18분이 넘는 곡이다. 18분 동안 들려줄만한 거리가 있나 싶을 정도이다. (남은 곡은 각각 4분, 4분, 3분, 9분 가량이다) 곡의 길이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겠지만 18분이 넘는 곡은 분명 평범한 일이 아니렸다. 부디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해주기를 바란다.



 [내마음 (내 마음은 황무지)]는 평소에 마이크를 잡던 김창완 씨가 아닌 베이시스트 김창훈 씨가 마이크를 잡은 곡이다. 덕분에 김창완 특유의 맑은 목소리가 아니라 불투명하고 탁한 목소리, 한대수를 연상시키는 창법을 체험해볼 수 있다. 퍼즈 톤의 기타에 베이스와 드럼이 둔탁하게 들어온다. 겨우 세 명이서 보컬만큼이나 거칠고 저돌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혹자는 이를 가지고 한국형 헤비메탈의 시작이라고도 말하는데 그렇게 생각할만도 하다. 이들이 밴드를 시작할 때 다른 밴드의 곡을 카피하지 않고 순수하게 본인들의 창작곡으로만 연주를 시작하였기에 그런지 딱 무어라 단정지어 말하기가 어려운 곡이 탄생했다. 


 [아무말 안해도]에선 다시 김창완 씨의 보컬이 나온다. 사실 굉장히 대중성 있는 노래인데 어딘지 모르게 약간의 낯설음이 느껴진다. 산울림 초기 곡들의 특징[각주:1]인데 전형성에서 항상 한두 조각 벗어나있다. 맑고 투명한 김창완 씨의 보컬은 거슬거슬해 보이는 악기들 위에 올라와 앉아있다. 악기가 다 멈추고 보컬만 나와야할 것 같은 부분에 기타 소리가 계속 들린다. 보컬과 어울리는 코러스가 나와야만 할 것 같은 곳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 했던 코러스(?)가 등장하기도 한다. 나는 이를 '전형성에서의 일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런 산울림 초기 곡 특징이 잘 드러나는 곡이다.


 [한마리 새되어]는 분위기가 다른 부드러운 발라드 곡이다. 전반부에서 줄곧 퍼즈 사운드를 내던 기타가 클린 톤으로 바뀌어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낸다. 베이스도 경쾌하고 빠르게 연주된다. 개인적으로 이 곡은 김창완 씨의 창작욕이 드러나는 곡이라고 생각[각주:2]한다. (작사, 작곡 김창완) 산울림 앨범에는 모든 앨범에 이런 류의 곡들이 적어도 하나 씩은 들어간다. 사이키델릭, 메탈, 펑크, 동요까지 퍼져있는 김창완 씨의 창작욕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앨범의 모든 곡들 중에서 유일하게 대중적으로 성공한 곡이라고 한다.


 [아무도 없는 밤에]는 9분 가량 되는 곡이다. 템포도 느릿느릿해서 처음 들으면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노래라고 생각하지 말고 재밍한 것을 녹음한 것이라 생각하면 좋다. 드럼과 베이스가 안정적으로 깔리는 위에서 기타가 조금씩 다른 변주를 해주는 곡이다. 앞의 세 곡과 뒤의 두 곡이 이런 면에서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의 차이가 난다. 1절과 2절 사이에 약 4분 가량의, 재밍처럼 들리는 기타 솔로(?)가 들어가 있다. 라디오에서 틀어주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좀 있는 그런 곡이다. 간혹가다 이 앨범이 블루스 록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곡 영향이 크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A면이 끝이 난다. 이제 LP판을 뒤집자.




네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그대는 이미 나]는 이 앨범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 앨범을 딱 샀는데 B면 수록곡이 딱 하나, 게다가 직접 들어보니 보컬 소리는 얼마 되지 않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연주 소리만 십수 분 계속된다. 뭐, 2집에서 6분짜리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3배는 길지 않은가. 무슨 게임 확장팩도 아니고말이다. 그런데 그렇다해서 노래가 나쁜건 아닌데 좋다고하기도 뭐하고, 간편하게 듣기보다는 각 잡고 앉아서 감상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이었을 것만 같다. 


 사실 외국 사이키델릭 / 프로그레시브 락에서 10분이 넘는 노래는 흔하다. 굳이 저 두 장르로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연주를 길게 하고자 하면 체력 딸리는 데까지 연주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 곡이 그토록 유명하고 인정 받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처음 선보인 시도이자 누구의 영향을 받아 만든 것이 아니라 산울림 스스로 생각해낸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누가 이런 곡을 만들 생각을 했고, 설사 했더라도 누가 감히 이런 곡을 수록해서 LP판으로 발매를 했을까. 지금 들어도 충격적인데 당시엔 어땠을지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라디오에 틀지 못 할 정도로 너무 길어서 대중들이 존재 자체를 몰랐을려나?


 여튼 여러모로, 산울림의 실험 정신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직접 들어보면 엄청나게 다양한 연주들이 나온다. 다른 악기는 등장하지 않고 기타, 베이스, 드럼만 등장하는데 18분을 버틴다. 마치 '내가 악기를 이만큼이나 가지고 놀 수 있다'라고 자랑하기 위해 만든 곡처럼 보일 정도이다. 본인들이 하고싶고 할 수 있는 연주는 다 하지 않았을까? 산울림의 전 커리어를 통틀어, 산울림이라는 밴드가 보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은 곡이 아닐까 싶다. 이 연주 부분만 따로 떼어나서 보더라도 훌륭하다. 감탄만 나온다.


 참고로 곡의 후반부에 김창완식 창작욕이 드러난 발라드가 잠깐 등장하고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가는데, 내 생각에는 다른 두 개의 곡이 하나로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아주 마음에 드는 구성이다. 이런 것들 좋아한다. 되돌아간 원래 주제는 템포가 더욱 빨라지고, 더 강렬해지며 인상 깊은 낙인을 찍고 마무리된다.



 이렇게 탄생한 앨범이 바로 산울림 3집이다. 메탈과 사이키델릭과 개러지와 펑크와 발라드와 동요 사이 어디 즈음에서 표류하고 있는 애매모호한 음악을 하고 있지만, 한국 락 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이정표 역할을 하는 중요한 앨범들 중 하나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 하나 올리겠습니다


 이 앨범을 그들의 연주 기술을 보기 위해서 듣는 사람이라면 기대를 접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3집 정도까지는 아직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해서 그런지 그런지 락 같은 색을 보인다. 셋이 동시에 멈추는 부분인데 따로따로 멈추기도 하고, 베이스와 드럼 박자가 미묘하게 어긋나서 박자감이 좋은 사람이라면 귀에 거슬릴지도 모른다. 깔끔하지도 않고, 해외 유명 뮤지션처럼 화려한 기술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 앨범을 만든 이들은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운 사람도 아니고, 당시 20살 초반의 젊은 나이었다.


 이 앨범을 사운드를 위해 듣는 사람이라면 역시 기대를 접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선 녹음 상태가 영 좋지 못하다. 78년도에 녹음되어 아마 이 글을 보는 사람 대부분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도 감안해야겠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음질이 좋지 못하다. 또한 산울림은 그런 화려한 사운드를 추구하는 밴드가 애초에 아니고, 그나마 그런 역할을 하던 키보드와 오르간이 3집에서는 빠졌다. 여기서는 순수한 밴드 멤버, 기타 하나 베이스 하나 드럼 하나만이 등장을 한다.



 하지만 음악은 이런 것들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장르가 불분명하다고해서, 연주 실력이 별로라고 해서 안 좋은 음악은 절대 아니리라. 오로지 직접 듣고 본인의 마음이 느끼는 대로가 중요한 것이다[각주:3]. 언제나 마음이 가는대로 듣고 좋다 싫다 말하면 된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런 앨범을 들을 때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 장르가 싫어'라든지 '인디 음악은 대중 음악보다 우월해' 같은 편견을 가지고 음악을 들으면 좋게 들릴 리가 당연히 없다. 그런 특정 장르 우월주의나 음악적 선민사상을 제발 버렸으면 좋겠다. 색안경은 벗어버리고 오롯이 음악만. 매일 같이 가르고 거르다보면 산울림 3집과 같은 명반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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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 the good die young.




  1. 개인적으로 연구한 부분으로, 일명 '뇌피셜'. 그렇기에 댓글로 욕해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다. [본문으로]
  2. 역시 바로 전 주석과 같은 '뇌피셜'. [본문으로]
  3. 쓰고보니 현대미술의 관점과 유사하다. 음악이나 미술이나 모두 예술이라는 범주니 당연한 것일 수도... [본문으로]
  4. 트랙리스트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들은 항상 앨범에 쓰인 그대로이다. 뮤지션의 의도한대로 쓴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