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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앨범] Currents - 2015




 음악하는 친구들과 종종 모임을 가질 때가 있는데, 거기서 가끔 나오는 농담으로 이런 것이 있었다. '호주 출신 음악은 비지스(The Bee Gees)와 AC/DC만 들으면 된다'. 이 두 그룹 말고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뮤지션이 없었다라며 비꼬는 식의 농담이다. 인구수가 우리나라보다 적은 곳인만큼 사람 수가 적으니 뮤지션 수도 적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말이다. (무엇보다 농담인데 별로 웃기지가 않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농담에 하나의 그룹이 더 추가가 되었다. 


 '비지스, AC/DC, 그리고 테임 임팔라(Tame Impala)'. 



케빈 파커의 섬진강기행


 사이키델릭 락이라는 장르는 1960년도 말 즈음에 아주 흥했던 락의 한 장르이다. 60년대 신디사이저와 같은 최신형 악기들과 백마스킹 같은 기법들을 이용해 환각을 체험하는 듯한 분위기를 내는 음악이었는데 당시 히피운동과 맞물려 엄청난 사회적인 이슈였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이 되고 사이키델릭은 다른 음악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마이너한 장르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렇게 이들의 시대는 끝났으나 그 영향은 꺼지지 않았는지, 90년대에 이르러 네오사이키델리아라는 이름으로 이들은 부활을 하게 된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도 이 장르는 살아남아 한 뮤지션을 탄생시켰으니, 이름하야 '테임 임팔라'이다.



 테임 임팔라 3집 'Currents'는 제목처럼 하나의 흐름과 같은 앨범이다. 앨범 전체를 들으면 마치 강물을 타고 내려오는 작은 땟목처럼 하나의 흐름을 느낄 수가 있다. 강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상류에서 시작해 하류까지 굽이치며 흘러나간다. 이 흐름은 1집과 2집에서보다 사이키델릭함이 줄어들고 다양한 일렉 사운드를 내며 보다 '부드러워진' 흐름이다. 보다 풍성한 사운드, 보다 다양한 표현법을 위해 사이키델릭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다양한 것들을 섞으면서 보다 부드러워진 흐름이다. (신디사이저의 영향이 크다) 때문에 앨범 전체로서의 완성도는 더 높아졌지만, 기존 모습으로서의 정체성은 오히려 더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2집 'Lonerism'에서 느껴지던 큰 임팩트 같은 것은 전반적으로 줄어들은 앨범이 되어버렸다. 2집의 모습에 반해서 팬이 된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으니... 퉁치도록 하자.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찾을 수가 있다. 테임 임팔라의 1집과 2집은 60년대 70년대 사이키델릭 음악을 많이 닮았었다. 비틀즈의 재림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이유도 (보컬의 목소리가 존 레논과 닮아서인 것도 있지만) 비틀즈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와 'Magical Mystery Tour' 시절에 하던 사이키델릭 락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3집은 80년대 팝 음악을 미묘하게 닮아있다. 비트도 전반적으로 디스코 비트가 많아지고, 신디를 왕창 넣어 만든 것이 영락 없는 신스 팝이다. 아무리 봐도 80년대를 연상시킨다. 시간이 흐르며 점차 시대를 따라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이것도 일종의 흐름인 것이 아닐까 싶다. 시대의 'current'를 따라가는 케빈 파커판 '섬진강기행' 말이다.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쭉


 'Current'는 술술 잘 넘어가는 앨범이다. 첫번째 곡 [Let It Happen]은 러닝타임이 7분 46초인데 막상 들어보면 그렇게 긴 것 같지도 않다. [Eventually]도 5분이 넘는데 짧게 느껴졌다. 곡들의 구성을 참 치밀하게 잘 짜서 그런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넘김이 가능했다. 하긴, 혼자서 앨범 3개를 만들 정도면 이 정도 실력은 기본이겠지. 대단한 양반이다.

 또 50분 가량 되는 앨범을 들으며 귀가 아프다기보단 오히려 반대로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강조된 신디사이저 소리와 케빈 파커 특유의 힘 빠지는 보컬 소리가 느린 비트의 리듬에 어울려져 이런 편안한 음악이 가능해졌다. 이 앨범의 어느 트랙의 어느 부분을 고른다 하더라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술술 넘어가는 앨범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앨범에도 멈칫멈칫 놀랐던 것들이 몇 개 있었다.


 첫째는 [Past Life], [Reality In Motion], [Love/Paranoia]였다. 특히 [Past Life]와 [Love/Paranoia]는 테임 임팔라가 원래 이런 음악도 하는 뮤지션이었냐는 생각이 들어서 놀랐다. 아마 이 앨범의 곡들 중 이전 작들과 가장 거리가 큰 곡들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약간 뜬금없다는 느낌까지 들었었다. 곡 하나만 놓고 본다면 80년대 신스팝을 훌륭하게 받아들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훌륭한 곡이겠지만 앨범 전체적인 느낌에서 보자면 이질적인 곡이었다.

 여기서 갑자기 이것들이 케빈 파커가 제시한 다음 앨범의 방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까지는 아니고 갑자기 이런 생각이 그냥 들었다)  [Yes, I'm Changing]이라는 제목의 곡을 왜 넣었겠는가. 나는 그가 자신이 끊임없이 변하고있으며 이것을 대중들에게 알리고싶어하고 미래에 대한 블루프린트를 이런 곡들을 통해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자신은 이런 음악을 할 것이라고. 만약 정말 이렇게 된다면, 기존 사이키델릭의 매력에 빠진 팬들은 많이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뭐 내 상상일 뿐이니 깊게 생각하지는 않겠다. 


 둘째는 [Let It Happen], [Cause I'm A Man], [Disciples]와 같은 곡들이었다. 이번 앨범은 한두 개의 히트곡이 있다기보단 전반적으로 비슷비슷한 느낌의 곡들의 모임이었다. 아무 곡의 아무 부분이나 들었을 때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앨범에도 청자를 휘어잡는 낚시바늘이 되어주는 부분이 필요한데, 이 앨범에서는 그것이 보컬이 하였다. 힘빠지는 듯하게, 꿈에서 들릴 법한 음성으로 부르는 보컬인데 몽환적인 분위기의 배경음악 사이에 가져다 놓으니 정말 눈에 잘 띄게 되었다. 이런 보컬의 목소리가 낚시 바늘 역할이 되어주어 청자를 휘어잡게 되었다. 위에 적어놓은 몇몇 곡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보컬의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강했던 곡들이다. 부드러운 버드나무가 태풍 속에서 강하듯 이런 곡에서는 케빈 파커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강했고, 그것을 실제로 보였다. 좋은 의미로 놀란 것이다.


 마지막은 케빈 파커의 대단함이다. 이 양반이, 1집에서는 밴드처럼 활동하더니 2집에서는 세션처럼 다른 사람을 썼고, 여기서는 이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본인이 직접 다 했다. 모든 악기를 다 연주했고 프로듀싱과 믹싱, 엔지니어링에 모두 직접 참여했다. 'Tubular Bells'를 냈던 한 양반[각주:1]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한 사람이 한 악기를 다루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여러 악기를 이렇게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아마 실력으로 모자라는 부분은 신디사이저로 채우지는 않았을까.... 농담이다.

 

 

짧은 마무리


 참고로 이 앨범은 공개되기 전에 많은 곡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선공개되었다. [Let It Happen]이나 [The Less I Know The Better] 같은 곡들이었다. 이렇게 유튜브로 공개된 곡들은 뮤직비디오를 하나씩 달고 나왔는데 나온 노래마다마다 뮤직비디오가 다 좋았다. 재밌는 발상과 예쁜 색감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Cause I'm A Man]은 2000년대 초반에 나올 법한 싸구려 3D 영상[각주:2]이라는 점이 웃겼고, [The Less I Know The Better]는 남자친구를 고릴라로 표현한 것부터 기타 등등 센스까지, 참으로 재밌었다. 꼭 한번 직접 보시길 바란다.


 특이하게도 내가 지금까지 좋은 앨범이라 생각했던 앨범들은 전부 다 앨범 커버가 예뻤다. 좋은 음악을 들어서 콩깍지가 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던 간에 아직까지는 깨지지 않은 공식이다. '앨범 커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앨범도 이 공식에 대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음악, 그리고 좋은 음반 표지. 노래를 들으면서 앨범 커버를 감상하면 참으로 기분이 좋다. 박물관과 전시회에 동시에 간 느낌이랄까. 옛말에 욕심부리면 안 된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조금만 욕심을 부리고 싶다.







Coming Up Next....


Standing in the hall of the great cathedral, waiting for the transport to come. Starship 21ZNA9.



  1. 마이크 올드필드. [본문으로]
  2. RHCP의 Californication 뮤비가 연상이 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