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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앨범] 손익분기점 - 1997




  한국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실험적인 뮤지션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않고 이들을 꼽고만싶다. 지금까지 많은 음악을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뮤지션 중에선 가장 실험적이고, 대중에서 먼 뮤지션이다. 보통 대중에게서 멀고 실험성을 추구한다고 말한다면 싸이키델릭이나 프로그레시브 쪽이라고 말할텐데, 이들은 그 범주를 벗어난 '아방가르드'를 추구한다. 저번에 포스팅했던 '밑'을 냈던 패닉이라든지 전위적이라고 소문난 '무키무키만만수'라든지 실험적이고 자신들만의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은 꽤 있지만, 이들만큼 이른 시기에 이만한 음악을 낸 뮤지션은 전후무후하다. 대한민국 대중음악 아방가르드 1세대이자 개척자가 아닐까 싶다.



대중성의 끝자락에 위치한 밴드


 볼수록 들을수록 의문점만 쌓여가는 뮤지션이다.


 앨범 커버부터 보자. 연약해보이는 한 늙은 남성[각주:1]이 손과 발이 묶인 채로 차도에 누워있다. 공포감과 허탈감의 중간 쯤 되는 표정으로 누워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이 독특한 앨범 커버에 흥미가 가서 자연스럽게 손이 가게 된다.


 뮤지션의 이름도 특이하다. 어어부라는 이름은 한자로 쓰면 漁魚父인데, 물고기를 잡는 사람인 어부(fishermen, 漁父)와 물고기의 아버지 어부(魚父)의 합성어라고 한다. 한 쪽은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이고 다른 한 쪽은 물고기를 보호하려는 사람이고, 이 둘을 붙여놓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라고 백현진 씨가 인터뷰에서 그러셔서 써놓기는 했는데 나도 사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면 그렇다해서 음악을 들리면 의문점이 풀리느냐, 그건 또 아니다.


 보컬인 백현진 씨의 보컬은 걸걸하다. 톰 웨이츠(Tom Waits)를 연상시킨다. 아저씨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다섯 병은 혼자 까고 집에 휘청거리며 들어가다 부르는 목소리 같다. 걸걸한 덕분에 감정이 아주 격하다는 것, 그것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겠다. 제대로 된 말이 아닌 이상한 효과음도 잔뜩 나온다. 가사는 안 그래도 알아듣기 힘든데 내용도 많이 꼬아놔서 이해하기는 정말로 더 힘들다. [담요 세상]과 [녹색 병원]의 가사는 수십 번을 들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국악기 소리도 들린다. 장구도 들리고 꽹과리도 들리며 일반적인 앨범에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영역을 건드린다. (잘은 모르겠지만 드럼 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드럼은 아닌 것 같다) 여기에 기타와 베이스가 실로 아름다운 연주를 보여준다. 여기에 뜬금 없는 타이밍에 등장하는 하모니카와 평소엔 잘 들을 수 없는 귀로라든지 워터폰이라든지 독특한 악기의 소리들.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에서는 트로트도 락도 아닌 이상한 영역을 왔다갔다거리고 [쏘세지깍두기(웩)]에서는 동요와 락의 범주를 넘나든다. 


 이런 음악이 소화하기 힘들다는 것(?)을 본인들도 알아서인지, 데뷔 앨범이니까 맛만 보여주려는 심리에서인지, 앨범은 4곡 약 19분 정도로 굉장히 짧다. 한 곡의 길이도 4분 조금 넘기는 정도라 그다지 긴 편도 아니다. 일종의 기존 음악에 대한 반항심인가 싶기도 하다.



 이들의 음악을 한 줄로 요약하겠다는 것은 무리한 시도처럼 보인다. 못난 실력으로 굳이 해보자면 '대중성의 끝자락'에 위치한 뮤지션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이처럼 대중성과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한 앨범이지만, 놀랍게도 막상 들어보면 묘한 중독성에 빠져든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대중성과 가장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한 전위예술이지만 직접 들어보면 정말 중독적이다. 기존의 음악적인 틀, 일반적으로 좋다고 인식되던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굉장히 중독적이고 아름답다. 마치 정상으로 가는 길은 이 길 말고 다른 길도 존재한다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음악은 굳이 이래야할 필요는 없다!'고 외치는 것만 같다.


 '작가의 말'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써있다.


 '이 앨범에는 자유나 탈출구가 없고, 기막힌 열정이나 굳세고 단단하며 순수한 약속이 없을 뿐더러, 이 지랄맞고 거대한 매머드 구조를 거꾸로 세울만한 의지가 녹아 있질 않다. 얼핏 Rock적이기는 하나 Rock이라는 Spirit 혹은 Cord를 어지간히 염두에 두는 분에겐 필요 없는 앨범이다. 분출하는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의지 불능자를 위한 감상용 음악이었으면 한다. 끝으로 기초 질서라는 것에 어느 부분 편입하고 있는 밴드라는 것을 감안하시길....'


 '분출하는 이'들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느낄 수 없는 이들을 위한 감상용 음악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롭고 자유로우며 창의적인 시도를 갈망하는 이들을 위한 음악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이들의 음악은 이들의 바람대로, 실로 자유분방하며 예측불가능하고 유래없는 음악이 되었다. 나의 마음 속에 있는 자유의지를 건들여주는 음악이 되었다. 틀, 프레임에 갖혀 수십 년동안 살아가서 온몸이 근질근질한 나의 몸을 싹싹 긁어주는 효자손이 되어줬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이 앨범은 굉장히 매력적인 앨범이다.' 비록 일반적인 대중 음악이 지향하는 그 어느 하나 취하지 않고, 기묘하고 전위적인 소리를 추구하여 혹자에겐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을 법 할 정도이지만, 내게는 실로 아름답고 온전한 음악이 되었다. 만일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 앨범은 굉장히 매력적인 앨범이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짧은 마무리


 사실 어어부프로젝트의 활동 중에서 가장 대중에게 친근한 앨범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2집 '개, 럭키스타'에서부터 이들의 음악은 새로운 장으로 접어든다. 보다 탄탄한 구성과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만들어지는 앨범들이 시작된다. 1집을 듣고 두근두근했던 사람들은 기대를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말을 아무리 쓴다고 해도 내 필력이 딸려 더 이상 잘 리뷰할 것 같지가 않다. 직접 들을 수 있으면 꼭 직접 들어보기를 바란다. 대중성의 끝자락에서 어떻게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직접 느껴보시라.


 주의사항을 하나 알려주자면 자기 직전에는 듣지 않는 것이 좋다. 혼자 잘 때면 더더욱. 괜시리 귀신이 나올까 무섭다.





Coming Up Next....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1. 트위스트 킴이라고 불리는 원로 배우라고 한다. 2010년도에 작고하셨다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