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유명한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를 프린스 식으로 바꾸자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파티를 즐기겠다' 이와 같은 생각이 깊게 담긴 앨범, '1999'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파티를 즐기겠다
1982년도에 발매가 되었지만 앨범의 제목이 1999인 것은 [1999]라는 수록곡의 이름에서 앨범의 제목을 따왔기 때문이다. 1999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던 종말의 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곡은 당장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 하더라도 (여기서 화자는 오늘 심판의 날이 온다는 꿈을 꾸었다고한다) 난 춤을 추고 파티를 열겠다는 한 사람의 노래이다. '우린 시간이 없어', '난 죽고 싶지 않아 차라리 춤을 추고 싶어'라고 말하는 모습이다. 훵키(Funky)한 리듬감과 신지사이저의 소리가 아주 흥겨운 곡으로 프린스의 쭉쭉 뻗어나가는 소울풍의 보컬도 들어볼 수 있다. 당장 내일 종말이 와서 미친듯이 그 순간을 즐기며 춤을 추는 사람들이 연상이 된다. (아마 프린스였다면 종말 전날에 콘서트를 열지 않았을까)
[1999]부터 [International Lover]에 이르기까지 긴긴 러닝타임 동안 이와 같은 정신은 변치 않는다. 그의 노래는 어느 것을 고르더라도 힘있고, 자극적이며 허리를 씰룩대도록 만든다.
프린스는 간단하고 단순한 것의 매력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선 코드의 진행이 바뀌었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단순하다. 도돌이표에서 탈출하지 못한 소리처럼 말이다. 신지사이저 리프도 단순하고 간단한 멜로디로 등장한다. 익숙하지만은 않은 소리이지만 굉장히 간단한 멜로디라 수십 번 반복하며 우리의 기억 속에 자연스레 새겨진다. 리듬악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본인이 모든 악기를 다 다뤄가며 만든 것이라 그런지, 베이스와 드럼의 궁합은 단순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서 가히 예술적인 궁합으로 쫀득쫀득한 리듬감을 보여준다. 그는 반복될수록, 간단하고 단순할수록 기억하기가 더 쉽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복잡하고 변칙적인 것은 처음 들을 때엔 좋을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마음에 들어와 자리잡는 그런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해서 연주가 심심하느냐, 그건 또 아니다. 신디사이저와 기타 연주는 실로 수준급이다. [Automatic]의 신디사이저 연주나 [Lady Cap Driver]의 기타 연주를 들어보시라. 문자 그대로 'Mind-blowing'하는 신디사이저 소리와 귀가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 하는 정도의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구성이나 소리가 단순한 곡들은 자칫하면 심심하고 지루하게만 들릴 수가 있는데, 그 위에서 부단하게 손을 움직여줌으로써 곡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완벽한 규칙성에 맞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짝 어긋남으로써 나타나는 강한 여운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단조로움을 타파하는 가장 큰 역할은 보컬이 해준다. [1999], [Little Red Corvette], [Delirious]에서 들리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울 풍의 락보컬, [Free]나 [International Lover]에서는 부드러운 곡과 본인의 강력한 보컬 사이의 적절한 접점을 보여준다. 누구나 이런 농염하고 도발적이며 섹시한 보컬을 듣는다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을 것이다.
그대 마음 속의 리비도
프린스의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성적인 코드이다. 아마 가사를 듣지 않고 노래만 들은 사람들이라면 그런 내용이 있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만약 그런 사람이 이 글을 읽고있다면, 당장 스크롤을 위로 올려 앨범커버의 숫자 중에서 '1' 부분을 자세히 보기를 바란다. 당당하게 이 앨범은 성적인 코드를 담고있다며 대놓고 광고하고 있었으며, 노래들도 이 기대(?)를 훌륭하게도 저버리지 않는다. 가령 여성을 [Little Red Corvette]라는 자동차에 비유해 만든 곡이라든지, 그대가 내 주위에 있으면 나는 황홀경(delirious)에 빠진다며 그 기분을 노래한 [Delirious], 돌직구로 '나와 관계하지 않을래?'라며 유혹하는 [Let's Pretend We're Married]라든지 앨범 곳곳에 깔려있다. [Lady Cab Driver]에는 한 여성의 정체불명의(?) 신음 소리까지, 짧게도 아니고 1분 정도나 넣어놨다. 이 정도면 지뢰마냥 숨겨놓은 것이 아니라 도로 이정표처럼 한번씩 보고가라고 설치해놓은 것이리라. 돌려말하기는 시간낭비이니 직접 말한다는 경제적인 방법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덕분에 과거 검열이 있던 시절 우리나라로 음반들이 넘어올 때 많이도 잘려나갔었다.
혹자는 프린스의 이런 모습을 변태 같다고 보기도 하지만 혹자는 본능에 충실했다고 평하기도 한다. 양쪽의 평가가 갈리는데 아직도 그런 논쟁이 가끔 나오고 있다. 실제로 PRMC(Parents Music Resource Center)라고 해서 이런 음악들로부터 학생들을 지키기 위한 학부모 모임도 등장하기도 했었으니, 얼마나 사회적 파장이 컸는지 대충 예상이 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 속에는 누구나 리비도가 있다고하지 않는가. 이 음악은, 그대 마음 속의 리비도를 제대로 자극시켜주는 그런 음악이다.
해치지 않아요
'Don't worry, I won't hurt you. I only want you to have some fun.'
[1999]를 시작하는 나레이션의 대사이다. 무서워 말라, 해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너가 재밌어했으면 좋겠다. 나는 이 구절이 프린스가 우리에게 이 앨범을 통해 하고싶어하던 것 전부라고 생각한다. 걱정 따윈 하지 말고 그저 'have some fun'하라는 뜻이다. 마치 내일이 세상의 종말인 것처럼 즐기라는 것이다.
프린스는 안타깝게도 얼마 전인 2016년에 세상을 떠났다. 국내에선 그렇게 인지도가 높은 뮤지션이 아니였는지라 사람들은 '프린스가 누구야?'와 같은 반응이 대다수였다. 아마 그의 죽음을 계기로 새로이 팬이 되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해치지 않아요. 그저 즐기세요.' 프린스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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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zy Creamcheese? Honey. What's got into 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