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도는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이 그 어느 때보다 컸던 시기였다. 1로 시작하는 밀레니엄이 끝이 나고 2로 시작하는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시기기도 했고,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기도 하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평양에서 악수하는 사진을 찍어온 시기이며, 2002년 한일월드컵이 다가오며 기대감이 부풀던 시기였다. IMF가 터진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싸이버 디지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와중에 분노하던 이들이 있었다. 몇몇 젊은이들은 기존의 것에 대한 저항과 분노를 뜻하는 '펑크' 음악으로 세상에 대해 분노했었다. 더럽고 비열하며 잔인한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감없이 표출하던 이들은 현재 '조선펑크 1세대'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심에 한 앨범이 있었으니, 바로 노브레인의 1집 '怒' 이다.
亂鬪하라, 젊은이여!
새로운 시대가 막을 올리는 시기에 이들이 낸 첫 곡은 [날이 저문다]이다. 막 해가 떠오르는 시대에 대해 '날이 저문다'라니! 가볍고 당찬 기타 소리로 시작하는 이 곡은 이 앨범의 전반부 '난투편'의 첫 곡이기도 하다. '난투편'의 도입부로 이런 곡을 정한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벌써 싸움이 끝난건지 물어보며 사람들에게 시덥잖은 눈초리로 활보하라는 이 곡은 저항성을 상징하는 곡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지금 우리의 세상은 침몰하고 무너지고 부서지는 중이므로 가만히 있지 말고 일어나야한다, 싸워야한다 말하는 곡이다. 펑크 정신 그 자체이다.
그러곤 다음 곡은 [애국가]이다. 건전가요 아니다. 일본의 후지락 페스티벌에 가서 욱일기를 찢고 부른 그 곡 맞다. 아무리 해도 내게는 우리가 비록 이렇게 싸움을 한다지만 이 싸움은 우리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한다는 보험과도 같은 말로 들린다.
[애국가]로 잠깐 쉬었다가 이들은 폭주하기 시작한다. [청년폭도맹진가], [티브이파티], [호로자식들], [십대정치], [Viva 대한민국], [잡놈패거리], [98년 서울], [정열의 펑크라이더]까지, 전트랙이 현 세태를 강하게 비판하는 강한 어조와 센 음악으로 되어있다. 영국의 펑크 밴드 '섹스 피스톨스'를 연상시키는 펑크 락으로 가득 찬 전반부가 바로 '난투편'이다. 이상우의 찢어질듯 한 보컬과 날카롭게 날이 선 상태로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는 차승우의 기타소리, 쉴새없이 몰아치는 베이스 소리, 가슴을 쿵쿵 울리는 드럼 소리를 가지고 이들은 난투를 펼쳤다.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동경하고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티브이'에게 한 번, 자본주의와 미국 문화, 식민지 지배가 남기고 간 병폐들에게도 한 번, '꼰대들'에게도 한 번 강펀치를 계속해서 날린다. 2
이들이 이렇게 거침없이 몰아세울 수 있던 것은 이들 자신들이 [잡놈패거리]였기 때문이라 직접 말해주고 있다. 눈물도 없고, 기대도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이들이기에 사회에 녹아들어 안주하지 않고 한발작 물러나 바라보며 이런 날선 비판을 해댈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겠다 외치던 이들도, 너희들의 창백한 고함소리도 온데간데 없고 사람들의 고함소리만 들리는 [98년 서울]의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회에 문제가 넘쳐나고 그것들을 직시하고 있는 이들이 어찌 감히 새 시대를 즐겁게 맞이하겠는가. 노브레인은 '아, 새천년이 왔다, X까라 밀레니엄 이 땅에 미래는 없다!'라고 외치며 엉엉 울 수 밖에 없었다. '썩어가는 세상을 향해 건배를' 들 수 밖에 없었다.
禮讚하라, 젊음이여!
[성난 젊음]부터 갑자기 앨범의 분위기는 바뀐다. 마치 가사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사운드도 같이 약해진 느낌이랄까. 우선 사운드는 스카 펑크에 '뽕짝끼'가 섞어 만든, 소위 '조선펑크'가 주가 된다. 난폭하게 질주하듯 들리던 사운드도 브라스나 키보드와 같은 소리가 들어가기 시작하며 조금 유순해졌다. 가사도 세상을 향한 주체할 수 없어보이던 분노를 추스르고 청춘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청춘예찬' 편의 시작이다.
청춘들에게 화를 내라, 화를 내야 젊은 것이다라며 말해주고 있는 [성난 젊음]의 가사를 첨부한다.
이어서 [제발 나를], [생기없는 모습], [너 자신을 알라], [이 땅 어디엔들], [바다사나이]를 지나며 젊은이들에게 끝없이 말을 건넨다. 꿈조차 꿀 수 없는 세상, 차라리 자신을 칼로 난자해달라는 [제발 나를], 니가 죽고 내가 죽어도 누구 하나 눈물 흘리지 않을 세상을 노래한 [생기없는 모습], 주위의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지 말며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지 말고 인식하고 충실하라고 전하는 [너 자신을 알라], 세상의 정의란 언제나 가진 자들의 편이라 말하는 [이 땅 어디엔들], 바다를 항해하는 마도로스에 자신을 비유해 이젠 추억으로 남아버린 청춘을 노래한 [바다사나이].
그러곤 사실상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 [청춘은 불꽃이어라]가 등장한다. 색소폰을 비롯한 브라스 소리가 인상적인 곡으로, 청춘은 곧 불꽃과 같으니 타오르라 말하는 곡이다.
젊은 영혼에 불을 당겨라, 청춘은 불꽃이어라.
모진 풍파에 몸을 맡겨라, 청춘은 불꽃이어라.
썩어 짓물러진 대지를 보라, 과연 무얼 위한 세상인가.
불꽃은 어둠을 집어 삼킨다. 청춘은 불꽃이어라.
세상은 썩어 짓물리고 있는데 거기 앉아서 무얼 하고 있는가, 영혼에 불을 붙이고 풍파에 몸을 맡기란다. 이 말을 듣고 박차고 일어나지 않을 청춘이 어디 있을까. 이보다 청춘을 잘 예찬할 수가 있을까.
이어 등장하는 [전자펑크 리믹스메들리] 또한 진국이지만 여기서는 설명을 줄이도록 하겠다. 궁금하면 직접 들어보기를 바란다.
청춘은 불꽃이어라
그리하여 이 앨범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앨범이다. 갓 태어난 '조선펑크'에게 대한민국식 펑크는 이러하며 앞으로 이렇게 나아가야한다 비전을 제시해 준 앨범이기도 하고, 2천년대 초반에 사회의 젊은이들이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이기도 하고, 강한 펀치를 그 누구에게나 날리던 불꽃과도 같은 젊음을 상징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3
얼마 전에 노브레인 20주년 공연에서 차승우가 등장하여 20년 전의 음악을 다시 연주했었다. 들으며 느낀 것인데, 역시 펑크 락은 젊음을 상징하는 음악이다. 불꽃 그 자체였다.
나는 이 앨범이 더블 앨범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싱글이었다면 아쉬워서 내가 2편을 직접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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