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이 앨범을 리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리뷰할 음반들 목록에 계획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갑자기 이렇게 리뷰를 하게 됐다. 연말이라서라든지와 같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엊그제 6시쯤에 집에 들어가다 서쪽 하늘을 우연히 봤는데 금성이 정말로 밝게 빛났다. 생각해보니 한 달 전 즈음에 화성도 저녁에 관측했던 기억이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화성도 얌전하게 금성 옆에서 빛나고 있었다. 금성과 화성이 사이좋게 붙어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 앨범이 생각이 났다. 이어폰을 꼽고 [Venus And Mars]를 들으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주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폴 매카트니 그 자체
비틀즈의 해체 이후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폴 매카트니는 아내 린다 매카트니와 기타리스트 데니 레인과 같이 소규모의 밴드를 하나 만들어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윙스(Wings)'이다. 하지만 말이 밴드지, 초기에는 거의 폴 매카트니와 나머지들과 같은 이미지였다. 밴드 활동 초기에는 밴드의 인지도를 위해서 'Paul McCartney and Wings'라고 하고 다니기도 했고, 'Red Rose Speedway' 앨범의 표지에는 폴 매카트니의 얼굴을 대문만하게 넣기도 했다. 거기다 앨범의 거의 모든 곡을 혼자서 작곡하고 노래부르는 꼴이었다.
폴 매카트니도 이 사실을 인지했는지 1975년 즈음부터 이런 분위기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윙스 후기작들을 보면 린다 매카트니나 드러머가 보컬에 선다거나 데니 레인의 작곡이 늘어난다던지 한다) 그런 변화 시도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 'Wings At The Speed Of Sound'이고 그런 변화 시도 이전의 과도기에 해당하는 작품이 바로 'Venus And Mars'이다.
그래서 그 색채가 약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폴 매카트니의 독자적인 앨범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Venus And Mars]와 [Rock Show] 메들리이다.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 시절부터 메들리를 엄청나게 좋아했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첫 두 곡과 마지막 세 곡 1 2이 이어지는 부분이라든지, 'Abbey Road' 앨범의 B side 메들리라든지 말이다. 이미 독자적으로도 완성된 두 곡을 자연스럽게 이음으로써 보다 부드러운 곡 간의 연결이 가능해졌다. 3
두 번째는 반복이다. [Venus And Mars]와 [Venus And Mars (Reprise)]처럼 폴 매카트니는 반복도 아주 좋아한다. Reprise를 이용한 반복은 'Sgt. Pepper;s...' 앨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외에도 'Band On The Run' 앨범처럼 [Mrs. Vandebilt]와 [Jet], [Band On The Run]의 멜로디를 마지막 두 곡, [Picasso's Last Words (Drink To Me)]와 [Nineteen Hundred And Eighty-Five]에 넣어놓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의 앨범이라는 통일성을 부여하였으며, 스토리에서 등장하는 '복선'과 같이 이야기를 보다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꾸미게 되었다. (가끔 나오면 모르겠는데 거의 모든 앨범마다 이런 것이 등장해서 사실 예상 가능한 부분이라 살짝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막상 들어보면 또 좋아서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건 비밀)
세번째는 매우 뛰어난 멜로디 라인이다. 내가 서양 대중음악사를 들으며 통틀어서 천재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몇 없는데, 그 중 제일은 폴 매카트니이다. 비틀즈 시절부터 윙스 시절까지 뽑아내는 멜로디가 전부 다 주옥같다. 본인 음역대도 넓고 발성법도 다양한데다가 다양한 악기를 다뤄서 그런지, 폴 매카트니가 쓰는 멜로디는 일반적이지 않고 머리 속에 팍팍 들어와 꽂힌다. 그의 작곡능력은 자타공인이다. 히트곡 제조기이다. 그는 진짜 천재다. 들어보면 안다. 더 다른 수식어가 필요할까.
그래서 나는 이 앨범도, 다른 멤버들의 비중이 커지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폴 매카트니의 솔로 앨범 같다. 거인의 그늘은 넓기만 하다.
마법 그 자체
'Venus And Mars'는 다른 폴 매카트니의 앨범들과 비교해봤을 때도 상당히 부드러운 편에 속한다. 추측컨대, 전작 'Band On The Run'이 비틀즈급 메가히트를 치고 새로운 곡에 대한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방향으로 앨범을 만든 건 아닐까 싶다. 일부러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미국식 감성을 자극하려는 시도는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말랑말랑한 음악으로 가득 차있다. ( [Venus And Mars] - [Rock Show] 메들리도 말만 락 쇼지, 사운드는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최소한 라이브에서 폴 매카트니가 보였던 것만큼의 느낌만이라도 넣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덕분에 부담 없이 듣기엔 딱 좋다.
그리고 역시나 폴 매카트니의 앨범 답게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한다. [You Gave Me The Answer]은 흑백 영화와 축음기를 쓰던 시절 나올 법한 배경음악 같이 생겼고, [Magneto And Titanium Man]은 60년대 미국 만화의 배경음악 같이 생겼다. [Listen To What The Man Said]에는 재즈 풍의 색소폰이 등장하고, [Love In Song], [Treat Her Gently / Lonely Old People]와 같은 발라드성 곡들도 잔뜩 들어가있다. [Call Me Back Again]은 소울 풍의 음악이 들어있고 [Spirits Of Ancient Egypt]에는 신비로운 사운드를 내려는 노력이 들어가 있다. (별로 신기하게 들리지는 않고 그들의 노력만 들린다) [Venus And Mars] - [Rock Show] 메들리의 구성도 참으로 특이하고, [Venus And Mars (Reprise)]를 두어 앨범 전체적인 통일감을 주려는 시도도 재밌었다. [Treat Her Gently / Lonely Old People]처럼 다른 두 곡을 이어서 하나로 만드는 시도도 전형적인 폴 매카트니식 실험성 되시겠다. (어떻게 보든 이 앨범은 폴 매카트니의 앨범이다)
이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을 꼽으라면 [Rock Show]를 꼽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Venus And Mars] - [Rock Show], 버전까지 고를 수 있다면 라이브 버전을 꼽겠다. 비슷한 시기에 유행했던 글램 록 콘서트를 7분이 조금 덜 되는 시간만에 다 듣는 기분이다. 소리가 정말 락 쇼와 같은 라이브풍의 사운드가 아닌, 어느 정도 정제된 사운드가 들어갔다는 것이 흠이지만, 곡의 구성적인 면에서는 만점을 줄 수 있겠다. 폴 매카트니의 완급 조절 능력과 곡 구성 능력이 잘 알아볼 수 있는 곡이다. 하나의 곡 안에서 도대체 몇 번이나 분위기가 전환되는지, 또 이게 왜이리 어색하지가 않은지, 7분이라는 시간은 또 왜이리 짧은지. 마술과도 같은 음악이다.
깔끔한 마무리
깔끔하게 듣기 정말 좋은 앨범이다. 음악이 땡기는데, 너무 강한 건 싫을 때 듣도록 하시라. 폴 매카트니식 마법을 체험할 수 있는 앨범이다.
아참, 자매품 'Band On The Run'도 있다.
Coming Up Next....
Well, it's one for the money, two for the show, three to get ready, now go cat, go!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와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본문으로]
- [Good Morning, Good Morning],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Reprise)], [A Day In The Life] [본문으로]
- 물론 [Good Morning Good Morning]의 개 짖는 소리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s (Reprise)]의 기타 소리가 이어지는 것은 우연이라고 본인이 밝혔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