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1970년도에 냈던 앨범 커버들은 항상 예술적이었다. 특히 'The Dark Side Of The Moon'부터 'The Wall'에 이르는 핑크 플로이드의 4 앨범은 앨범 커버로 보나 내용물로 보나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였다. 그 중 'The Wall'은 네 앨범 커버 중에서 가장 함축적으로 앨범이 뜻하는 바를 전하는 커버였다. 새로 CD로 나온 버전에는 위의 사진처럼 빨간 글씨로 'Pink Floyd The Wall'이라고 써있지만, 원판에는 아무 글씨도 없는 그저 새하얀 벽 그림만 있었다. 가만히 이 벽을 보며 음악을 조용히 듣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졌었다.
사람들 사이에 벽이 있다
'The Wall'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명제부터 글을 시작하려면 다음 문장으로 글을 시작해야할 것이다.
'The Wall'은 컨셉 앨범이다
그렇다. 2CD 26곡 81분으로 구성된, 아주아주 긴 컨셉 앨범이다. 컨셉 앨범이란 무엇이냐, 말 그대로 앨범이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컨셉을 잡고 만들어진 것을 말한다. 가령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가진 곡들을 모아놓는다던지, 곡들 간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하나라는 통일감을 준다던지, 어떤 이야기를 가운데에 심어놓아 서사성을 확보한다던지 하여 앨범의 '컨셉'을 잡는다. 'The Wall'은 그 중에서 서사성을 잡은 앨범에 속한다. 따라서 '이 앨범'이라는 표현을 '이 이야기'라는 표현으로 치환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1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핑크(Pink)이다.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았던 핑크라는 주인공의 일생을 담은 하나의 이야기이다. 핑크의 아버지는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해 그의 어머니하고만 산다. 그러나 어머니의 왜곡된 사랑과 획일화되고 억압적인 학교의 교육을 받고 핑크는 마음 속으로 벽을 세워 사회와 단절된 채로 산다. 운 좋게 아내 덕에 그 벽을 허물게 되어 아픔을 딛고 락 스타가 되지만, 결국 파시즘에 가까운 광기를 보여주게 되고, 마음 속의 재판을 여는 것으로 끝이 난다. (간단히 말한 것이어서 생략된 이야기가 많으니 꼭 직접 앨범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이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하고, 계속해서 나오는 대상이 하나 있다. 바로 '벽'. 첫 곡 [In The Flesh?]부터 [Outside The Wall]까지 그 의미하는 바만 조금씩 바뀌어서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처음으로 나오는 벽은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벽이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One]의 가사는 "아버지는 바다 건너 날아가셔서 / 기억 하나만 남기고 가셨지 / 가족 앨범 안의 사진 / 아버지 제게 또 무얼 남기셨나요 / 아버지, 저를 위해 무얼 남겨주셨나요 / 남겨주신 건 이 벽 속의 벽돌 한 장 뿐 / 남겨주신 건 고작 이 벽 속의 벽돌 한 장일 뿐"인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핑크가 어릴 때 전쟁에 참가해 전사하셨기에 핑크에게 남은 건 가족 앨범의 스냅샷 한 장과 이 벽 속의 벽돌 한 장 뿐이었다. (필자는 집으로 해석을 하고 싶다. 벽돌로 된 집 말이다.)
다음으로 나오는 벽은 억압적인 교육의 벽이다. 핑크 플로이드 싱글 중 가장 성공했던 싱글이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던 곡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Two]에 등장하는 벽으로 학교가 학생들의 생각을 조종해서,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고기 반죽처럼 획일적인 학생들을 만든다며 비판을 하기 위해 사용한 소재이다. 이렇게 획일화된 학생들은 '그저 벽 속의 벽돌 한 장일 뿐'이라며 비판하는 곡이다. 인상적인 베이스 연주와 실제 학생들을 이용한 코러스 등이 인상적이다.
세 번째 벽은 사회와의 벽이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Three]에 나오는 벽으로, 아내가 불륜으로 핑크를 떠나버리자 '아냐, 난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 결국 이것 또한 그저 벽 속의 벽돌 한 장일 뿐이었어 / 결국 당신도 그저 벽 속의 벽돌 한 장일 뿐이었어'라며 사회와 자신을 단절시키는 벽을 완성시킨다. 위의 두 곡보다도 힘차고 불길한 사운드가 많이 가미된 곡이다.
위의 세 곡들은 모두 같은 멜로디를 바탕으로 짜여진 세 개의 다른 노래이다. 세 개를 연속해서 들어보면 같은 멜로디지만, 멜로디만 공유할 뿐 다른 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노래에서 뜻하는 벽이 의미가 다 다르니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벽의 의미는 '차별'의 벽이다. [In The Flesh]에서는 인종차별주의자가 된 핑크가 자신의 콘서트에서 팬들에게 동성애자(queers), 유대인(Jewish), 흑인(coon)들을 '벽'에다 세워두고 총으로 쏴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이 경우는 당연히 미치광이 독재자가 된 핑크를 상징하는 소재일 것이다.
이리하여 핑크는 살아가며 네 개의 벽을 세우게 된다. 아버지가 남긴 벽, 억압적인 교육이 만든 벽, 사회와 자신이 세운 벽, 소수인을 차별하며 갈라놓은 벽. 그리고 마지막으로 [The Trial]에서 핑크는 이런 벽들을 세운 자신을 상대로 상상의 재판을 시작하게 된다. 이 앨범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하며 아름다운 부분이다. 자신의 어머니, 학교 선생, 아내 등의 사람들이 등장하며 핑크를 비난하고, 마지막에 '벽을 허물어라'라는 판결이 나오는 부분까지, 하나도 빼놓을 것이 없는 명장면이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나오는 벽은 핑크 자신의 자아를 상징하는 것 같다. 벽을 허물라는 것은 자아가 붕괴해버려 끝내 미쳐버린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이 앨범은 '벽'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풀어낸, 핑크 플로이드가 사회를 보며 느꼈던 시니컬한 웃음인 것이다. '벽'으로 귀결되는 사회의 문제들, 지나치게 과잉 보호했던 부모의 사랑, 획일적으로 사람을 키우는 학교의 문제, 인간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개인과 사회 사이의 벽, 소수자들을 비하하고 괴롭히는 차별들을 핑크 플로이드는 '벽'에 비유를 하였다. 마지막에 이러한 사회의 병폐에 의해 '핑크'라는 한 인간의 자신의 마음의 벽을 무너트리면서 끝내 자신의 자아를 붕괴시키고 완전히 미쳐버리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이 앨범 전체에서 수동적으로만 등장하던 핑크는 끝내 사회에 의해 미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불쌍한 한 인간의 이야기를 그들은 'The Wall'을 통해 담아내고 싶었으리라.
그래서 핑크 플로이드는 우리한테 벽들을 부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에 부순 핑크 그 자신이 아니라, 앞서 나왔던 네 개의 벽들 말이다. [The Trial]은 핑크 자기 자신에 대한 재판이기도 하지만, 핑크 플로이드가 사회를 대상으로 내린 재판이기도 한 셈이다. 사람들 사이에 굳건히 서있는 그 벽을 부숴야한다며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 앨범이란 말이다.
Tear Down The Wall!
쓰고 보니 '벽'이라는 소재에 대해서만 쓰고 음악적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은 이상한 음악 리뷰가 되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앨범이라 생각한다.
이 앨범은 (필자가 보기에) 최초로 등장한 가장 완전한 형태의 락 오페라이다. 스토리가 튼튼한 것은 당연할 뿐만이 아니라 담고 있는 주제 의식, 유기적인 곡 구성, 사용한 음악적 효과들의 적절성, 훌륭한 연주 등 여러 방면에서 빼놓을 수가 없다. 2
그렇기에 'The Wall'은 락 음악을 단순히 듣고 즐기는 용도에서 듣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방법을 개척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새로운 형태의 사회 참여 방법인 셈이다. 그들이 사회를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문제들을 앨범에 하나의 비유적인 이야기로 담아서, 사람들이 그 비유를 보고 해석하며 자연스럽게 그 문제들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얼마나 천재적인 발상인가.
따라서 이런 이유로 이번에는 특이하게 음악 리뷰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학 리뷰와 비슷하게 서술하였다. '벽'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들이 무얼 표현하려했는지, 어떤 의미인지 등으로 말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음반이다.
음악적인 부분을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 몇 줄 더 붙인다. 이 앨범은 전반적으로 우울하다. 우울한데 굉장히 장대한 스케일을 다루는 음악이라 동시에 장엄하다. 대부분의 소리들이 실제 대화한 내용을 잘라 붙였거나 실제 효과음을 사용한 느낌을 줘서 '음악'이라기보다는 '녹음본'이나 '방송본'과 같은 느낌이 더 든다. 핑크 플로이드가 'Atom Heart Mother'에서부터 'The Dark Side Of The Moon'까지 시행했던 여러 번의 음악적 실험들이 빛을 보는 순간이다. 적절한 효과음들이 적절하게 사용이 되어 귀가 즐겁다.
이들의 연주도 빼놓을 수가 없다. 기타며, 베이스며, 드럼이며, 키보드 뿐만이 아니라 각종 악기들 하나하나마다 다 살아있는 목소리를 낸다. [Comfortably Numb]의 기타 솔로나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Two]의 기타 베이스의 합 등 곡이 만들어내는 느낌을 위한 최선을 항상 하고 있다. 듣고 거슬릴만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 앨범은 가능하면 한 번에 이어 들으라는 말을 하고 싶다. TV 드라마 같은 거 볼 때도 정주행하면서 쭉 봐야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한 편 보고 일주일 기다리고 또 보면 전 이야기들이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음악은 더구나 시각적인 정보가 아니기에 기억에서 잊혀지는 속도도 빠르다. 그래서 이어서 보라는 소리이다. 가능하면 이 음반은 이어서 한 번에 쭉 듣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읽었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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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I will be alone again tonight, my d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