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음침해 보이는 침실, 침대에 한 사람이 누워있다. 창가에서 따뜻하게 그를 비치는 햇빛이 무색하게도 그는 일어나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약에 잔뜩 취했는지, 잠에 깊게 취했는지,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쓸쓸해보이는 앨범 커버를 감상하며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첫 곡 [Introducing The Band]부터 불길하게 들리는 분위기와 음침한 노래 가사가 아주 환상적으로 잘 어울린다.
영국의 밴드 '스웨이드(Suede)'의 2집, 'Dog Man Star'이다.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담아내다
사람이 사는 것이 언제나 밝고 즐거울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해가 새로 뜨기 위해 한 번은 져야만 하듯이, 어떤 때에 즐겁고 기쁘다면 어떤 때는 기꺼이 슬퍼하고 우울해야할 때가 반드시 와야만하는 법이다. 살면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그런 우울함들이 있는데, 'Dog Man Star'의 노래들은 인생의 이런 우울함과 놀랄만큼이나 닮아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슬픔을 담아놓은 음악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누구나에게 이 앨범은 미묘한 매력을 풍긴다. 50분이라는 짧은 시간만에 사람의 마음 속에 깊은 곳에 절여놓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기가막히게도 잘 포착해서 우리의 마음에 있는 공감 능력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이내 곧 지난 날의 슬픈 기억들을 주섬주섬 꺼내며 이 음악 앞에서 위로받는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빠져나올 수가 없다. 개미지옥에 발을 들인 개미가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모래수렁 안으로 빨려가듯 우리도 여기까지 온 이상 이 앨범에 온 감정을 맡기게 된다.
이들의 음악은 한없이 우울하지만, 또한 동시에 마냥 우울하지만도 않다. 가만히 눈을 감고 트랙들에 몸을 맡겨 순서대로 듣다보면 어둡고 불안하게 들리는 음들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편안한 감정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이내 그 편안함은 나를 감싸고 평온함으로 이끈다. 가슴이 아플 때 실컷 울고 난 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물밀듯이 흘러나오는 것과 같다. 비가 살포시 내린 뒤 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는 것과 같다.
이 미묘한 매력은 카타르시스를 청각화 시킨 것과 같다. 스웨이드는 이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음악 속에 담아내었다.
소리를 이용해 사람의 마음을 잡다
이 음반은 90년대 브릿팝의 시작과도 같은 음반으로, 기타리스트 버나드 버틀러가 탈퇴하기 이전의 스웨이드 색을 가장 잘 담아낸 앨범이기도 하다.
우선 특이하게 부르는 보컬이 눈에 띈다. 스웨이드를 처음 들었을 때 '보컬이 참 특이하게 부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스웨이드를 들은 지 꽤 된 지금 다시 들어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데이비드 보위의 끼와 모리세이의 분위기를 반 정도 따와서 섞으면 이런 느낌일까, 쏜애플이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면 이런 느낌일까, 확실히 특이하고 차별되는 인상을 남기는 발성이다. 가성과 진성, 고음과 저음을 넘나든다. 목소리는 감미로워서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귀에 잘 들어온다. 술에 취해 칭얼거리는 이 콧소리는 정말로 매력적이다.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는 부드럽고 블러(blur) 처리를 한 느낌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 기타가 전면에 나오지 않고 뒤에 숨어서 절제를 하며 조용히 다른 악기를 받혀주기만 한다. 보컬이 최전선에 서고, 그 뒤에 키보드나 피아노가 와서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심어준다. 나머지는 뒤에서 잔잔하게 등장한다. 기타리스트가 탈퇴하기 직전의 앨범이라 의도를 한 건지 아닌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관현악의 소리를 얇게 도금을 하여 몽유도원도와 같은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굳이 풍성한 소리와 다양한 효과음을 양쪽 귀 가득 채우지 않아도 된다고 보여준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소리들을 소극적이고 뒤로 배열해서 배경과도 같은 효과를 줌으로써 이런 멋진 음악을 만들었다.
짙게 낀 안개 속에서 모습을 점차 드러내는 것을 형상화한 것 같은 신비로운 곡 [Introducing The Band], 우리들은 Pig이오, Swine이라고 외치며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We Are The Pigs], 기타가 전면에 나와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Heroine],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자신의 기량을 한껏 뽐내는 보컬이 일품인 [The Wild Ones], 꿈을 꾸는 것 같은 [Daddy's Speeding], 아름다운 발라드곡 [The Power], 이 앨범에서 가장 공격적인(?) [New Generation], 블루지한 리듬에 약간의 퍼즈 사운드를 넣어 이 앨범에서 가장 시끄러운(?) [This Hollywood Life], 울적하게 만들어버리는 절절한 피아노 발라드 곡 [The 2 Of Us], 서사적인 느낌의 피아노 발라드 곡 [Black Or Blue], 9분이 넘는 시간 동안 들려주는 한 편의 비극적이지만 장엄한 서사시와 같은 [The Asphalt World], 관현악 사운드와 참은 것을 터트리며 분출하는 보컬이 앨범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Still Life].
술에 취해 칭얼거리듯 부르는 보컬, 신비감을 조성하는 기타와 키보드 소리, 배경에 병풍처럼 깔리며 부드럽게 파고드는 관현악의 소리. 사람의 아픔을 어루어만져주는 그 기묘한 소리는 여기서 나온다.
사람을 위로하는 앨범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만약 당신이 아름다운 별빛 아래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면, 당신은 모두가 잠든 시간에 또 하나의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정적 속에서 깨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밤이 되면 피어나는 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문장이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바꿔 해석을 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쓸쓸한 고독과 정적 안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면, 당신은 모두가 잠든 시간에 별빛과 같이 아름다운 세계가 고독과 정적 속에서 깨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슬픔과 고독 속에서 밤을 지새워본 사람이라면,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 흘리며 그 감정에 몸을 맡겨본 이들이라면 그 안에 별빛과 같이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그런 감정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감정을 나도록 도와주고 그것을 앨범으로 담아놓은 것이 바로 스웨이드의 2집 'Dog Man Star'이다.
이 앨범은 쓸쓸하고 고독을 느끼며 상처받은 이들을에게 스웨이드가 전해준 진정한 위로의 표현이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앨범이다.
그들은 우리를 이렇게 위로하고 있다. 얼른 개에서 사람이 되고, 사람에서 별이 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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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 리~ 부 서 지 는~ 파 도 소 리~ 귓가에 들~ 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