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파리 천문대의 천문대장인 프랑수아 아라고는 당시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천문학 교수이던 위르벵 르베리에(Urbain Jean Joseph Le Verrier)에게 수성의 공전 현상에 관한 연구를 제안했다. 수성은 태양 가까이에서 공전을 하기 때문에 지구에서 관측하기 어려운 조건이었으므로, 아라고는 수학을 잘 하던 르베리에에게 뉴턴의 고전역학을 이용한 수성 궤도 모델을 만들자 제안한 것이다.
르베리에는 3년 뒤에 수성의 태양면 통과 현상을 이용하여 수성 궤도를 내놓았다. 그는 해왕성을 천왕성 궤도 상의 흔들림을 이용하여 예측해낼 정도로(1846년, 이 시점에서는 미래이다) 뛰어난 수학 실력을 갖추었으므로 자신만만해 하였으나 실제 관측과 그의 이론은 상당 부분 달랐다.
이후 14번의 일면통과와 수차례의 자오선 관측을 통해 좀 더 정확한 자료를 1859년에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것도 실제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수성은 다른 행성들과 태양의 중력 간섭 때문에 100년마다 574초정도 근일점이 전진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수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의 수차례 계산에 의하면 531초의 전진이 일어나야만 했었다. 다시말해 43초정도의 오차가 [ 설명 불가! ] 였다. 뉴턴이 설립한 고전역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수성의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천문학 교수이던 르베리에에게도 이 문제는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르베리에는 대담한 가정을 하였다. 그것은 바로 "수성 안쪽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행성이 하나 존재한다". 1846년에 순수한 계산만으로 해왕성을 발견하였으므로 이러한 가정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는 이 비밀스러운 행성을 로마 신화의 대장장이 신인 벌컨의 이름을 붙여 벌컨(Vulcan)이라 불렀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수도 있었던 하나의 몽상을 부풀리는 계기는 한 프랑스의 아마추어 천문학자였다.
1859년 12월의 어느 날 르베리에에게 에드몬드 레카보(Edmond Modeste Lescarbault)라는 사람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 편지에는 그가 수성 안쪽의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고 르베리에는 그의 천문대가 있는 오흐줴흐-엉-보스(Orgeres en Beauce)라는 마을로 갔다.
레카보는 1859년 3월 26일에 그의 3.75인치 굴절망원경을 이용해 태양 표면을 관측할 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흑점이려니 했으나, 그것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것이 새로운 행성이라는 생각을 해 허겁지겁 위치와 운동방향, 그리고 맥박을 재는 진자로 통과 시간을 계산했다. 그의 계산에 의하면 통과 시간은 1시간 17분 9초였다.
르베리에는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제 해왕성과 벌칸의 위치를 발견하기도 전에 계산해낸 뛰어난 천문학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급히 발표를 준비해 이듬해 1월 2일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벌컨의 발견을 발표했다. 이견도 있었으나, 이미 행성을 계산으로 발견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대로 믿었다. 레카보는 레지옹도뇌르 훈장도 받고, 수많은 곳에서 초청도 받았으며, 르베리에는 두 행성의 발견자라는 명예를 얻었다.
그 둘의 계산에 의하면 벌컨의 정보는 대략 이렇다.
궤도 반지름 |
2100만km (0.14AU) |
궤도 모양 |
거의 정원 |
공전 주기 |
19일 17시간 |
궤도 경사 |
황도면에서 12˚ 10´ |
지구에서의 최대이각 |
약 8˚ |
이후 르베리에는 레카보와 자신의 연구결과에 수많은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의 벌컨 관측 보고서를 받아 계속 궤도 수정, 보정을 하였다. 대부분의 정보는 날짜도 제대로 적히지 않아 정확하지 않은 것이었으나 르베리에는 이를 이용해 조금씩 수정해나갔다.
그렇다! 수성과 태양 사이에는 새로운 행성이 숨어져있던 것이다.
과가 아니라
tbc